안도와 기쁨, 좌절과 분노가 동시에 터져나온 발리 기후변화 회의였다. 핵심은 여전히 백지 상태로 남겨 둔 채 가까스로 파국만 막은 모양새다.
예정일 보다 하루 넘겨 15일 인도 발리에서 폐막한 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막판 극적으로 ‘발리 로드맵’을 이끌어냈다.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12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09년 말 15차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에서 최종 협상을 타결짓기로 한 것이다.
선진국은 상당한 정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개발도상국은 측정가능하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자발적으로 감축하는 방향으로 협상해 나가기로 했다. 이로써 39개국에 한정됐던 교토의정서를 대신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새 기후변화협약 제정의 최소한의 기반은 만들어 놓은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완강한 반대로 핵심 쟁점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정하는 데는 실패해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유럽연합(EU) 등은 당초 선진국이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의 25~40%까지 감축할 것을 주장했지만, 미국 등의 반대로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결국 EU 등이 주장한 감축 목표치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는 참고 조항으로만 삽입되는 선에서 봉합됐다.
이날 마지막 전체회의에선 미국 대표단과 각국 대표단간 시끌벅적한 감정 싸움도 오갔다. 미국 대표가 초안 채택을 거부하는 발언을 하자 야유가 쏟아져 나왔고 곧바로 발언권을 얻은 파푸아 뉴기니 대표가 “회의를 진행할 의지가 없다면 방해하지 말고 우리에게 남겨두라”고 성토, 환호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번 회의 결과에 대해 2005년 몬트리올 회의 당시 도중 퇴장하는 등 기후변화협약을 고집스럽게 거부해온 미국을 협상테이블에 앉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실망과 좌절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워싱턴 대학의 앤드루 라이트 교수는 “감축 목표치를 분명히 했어야 했는데, 결국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서 놓이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온실가스감축 노력에 대한 전세계적인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끝까지 버티고 있는 데는 중국과 인도에 대한 규제 문제 때문이다. 최근 몇 십년간 중국과 인도의 굴뚝산업이 급속도록 팽창, 온실가스 배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미국으로선 이들 나라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발리 로드맵 타결 채택 이후 곧바로 미국 정부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주요 개발도상국도 똑 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치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고성장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규제에서도 앞으로 험난한 국제적 힘겨루기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가 유연성의 정신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면서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앞으로 더욱 복잡하고 길고 어려운 협상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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