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국제연맹 본부가 있었던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뒤, 국제연맹의 후신이라 할 국제연합본부는 뉴욕에 들어섰지만, 그것이 제네바의 국제성을 크게 허물지는 못했다.
크게? 사실은 조금도 허물지 못했다. 국제연맹 본부 건물이었던 만국궁(萬國宮: Palais de Nations)은 국제연합의 출범과 함께 그 유럽본부 건물이 되었고(스위스가 2002년에야 국제연합 회원국이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별나다), 국제연합 안팎의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HO), 국제적십자위원회,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의원연맹(IPU), 세계경제포럼(WEF),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노동기구(ILO), 세계기상기구(WMO),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국제표준화기구(ISO), 유럽경제위원회 따위는 제네바가 품고 있는 기다란 국제기구 리스트의 일부분일 뿐이다. 사람들이 제네바라는 이름에서 대뜸 이런저런 국제기구들을 떠올리는 것도 당연하다. 기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제네바에서 기자였던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취재를 하기 위해 그 도시에 간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도심 북쪽에 몰려있는 그 국제기구들 앞을 스쳐지나가면서도 별다른 감회를 지니지 않았다.
내게 제네바의 북방한계는 코르나뱅역이었고, 남방한계는 제네바대학이었다. 코르나뱅역 북쪽으로는 어지간해서 가지 않았고, 제네바대학 남쪽으로도 어지간해서 가지 않았다. 실상 제네바 사람들의 일상은 내 북방한계와 남방한계 바깥의 주택가에서 더 생기있게 이뤄지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제네바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다. 그것들이 코르나뱅역과 제네바대학 사이에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 시계 매장, 레망호, 론강, 루소 섬, 영국공원과 꽃시계, 바스티옹광장, 생피에르사원, 종교개혁 기념비 같은 것.
코르나뱅역과 제네바대학 사이의 공간은 내 기억 속에 몽환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 기억의 현실감을 앗아가는 ‘드럭’은 레망호다. 제네바호라고도 부르는 이 호수가 론강(江)과 만나는 지점에 몽블랑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 위에서 레망호와 그 주변의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예쁜 컬러 그림들이 잔뜩 있고 글자는 얼마 없는 동화책. 레망호는, 내 눈에,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제네바가 예쁜지는 잘 모르겠으나, 레망호와 그 주변은 징그럽게 예쁘다. 그러나 제네바에 갈 때마다, 내가 그 동화 속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파리 리옹 역에서 TGV로 세 시간이면 닿는 곳이 제네바지만, 이 곳의 물가는 파리의 백수가 감당하기에 터무니없이 높았으니 말이다.
■ 높은 물가… 백수에겐 '눈의 즐거움'뿐
제네바에서 버젓하게 식사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코르나뱅 역전의 버거킹을 열심히 드나들었을 뿐이다. 와퍼와 감자튀김과 오렌지주스, 그것이 내가 제네바에서 일용한 양식이었다. 레망호 주변의 집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거 공간 가운데 하나라 한다. 하기야 그렇게 아름다운 전망을 지닌 집들을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뉴욕엘 가보진 못했으나, 그 곳 펜트하우스의 전망도 레망호 주변 건물의 전망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가난한 자에게 제네바가 베푸는 것은 눈의 즐거움뿐이다. 레망호 주변의 제네바는 드림랜드지만, 돈 없이 그 꿈나라의 시민권을 얻을 수는 없었다.
제네바의 루소 생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레망호의 베르그 다리와 연결된 아주 조그만 섬에는 루소 섬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거기 루소 동상이 서있다. 아니, 앉아있다.
루소는 1712년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자신의 헌걸찬 지적 욕망과 후원자들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행운과 불운의 우연적 교직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시계공이 됐을지도 모른다. 코르나뱅역과 레망호를 잇는 몽블랑거리의 시계 매장들을 스쳐 지나며 사상가 루소의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은 즐거웠다.
평생 제네바 사람이라는 것을 공언하면서 산 루소에게 고향 도시의 조그만 섬이 헌정된 것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제네바와 연관이 있는 역사적 인명이 루소만은 아니다.
생피에르교회와 거기서 멀지 않은 종교개혁기념비의 주인공은 장 칼뱅이다. 칼뱅은 16세기 중엽 생피에르 교회를 중심으로 제네바에 엄격한 신정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이 도시를 유럽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세워진 종교개혁기념비에는 칼뱅과 동료 종교개혁가 세 사람의 상이 조각돼 있다.
종교개혁기념비 건너편의 바로크건물, 제네바대학은 20세기 지성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몇몇 이름과 연결된다. 그 이름들 가운데 맨 처음 꼽아야 할 것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바탕을 마련한 페르디낭 드 소쉬르일 것이다. 소쉬르는 제네바에서 태어나 제네바대학에서 공부했고 만년에 모교에서 가르쳤다.
소쉬르의 제네바대학 강의는 그가 작고한 뒤 제자 알베르 세슈에와 샤를 발리의 손을 거쳐 <일반언어학강의> 라는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그 표제가 가리키듯 일반언어학 교과서지만, 20세기 한 때 언어학을 넘어서 거의 모든 인문사회과학을 적신 구조주의 물결의 한 수원지이기도 하다.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 다시 그의 제자들로 이어진 제네바대학의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을 흔히 제네바학파라 부른다. 일반언어학강의>
문학비평계에도 제네바학파가 있다. 작고한 문학비평가 김현의 <제네바학파 연구> (1986)라는 책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마르셀 레몽, 알베르 베갱, 조르주 풀레, 장 루세, 장-피에르 리샤르, 장 스타로뱅스키, 힐리스 밀러 같은 사람들이다. 제네바학파>
이들은 연배도 국적도 달랐지만, 제네바대학과 직간접적 관련을 유지하며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문학비평 속에 녹여내려 궁리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 루소·칼뱅·소쉬르의 흔적들 곳곳에
지성사의 교훈 하나는, 어떤 대학에 위엄을 베푸는 주체는 그 학교 졸업생들이 아니라 교원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언어학의 제네바학파나 문학비평의 제네바학파 사람들 가운덴 제네바대학 졸업생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이 제네바학파를 만들어낸 것은 그 학교 졸업생으로서가 아니라 교원으로서였다.
제네바의 이웃 도시 로잔의 로잔대학도 레옹 발라와 빌프레도 파레토로 이어지는 경제학의 로잔학파로 지성사에 그 이름을 올렸다. 일반균형이론이 로잔대학과 연결되는 것은 그 곳에서 가르쳤던 사람들을 통해서지 그 곳에서 배웠던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다.
제네바와 긴밀히 연결된 역사적 인물들은 스위스의 다른 지역보다 외려 프랑스와 인연이 더 깊었다. 제네바 사람 루소는 성년기 이후 프랑스인으로 살았고, 칼뱅은 피카르디 지방 출신의 프랑스인이었으며, 소쉬르도 장년기의 11년을 프랑스에서 살았다. 문학비평의 제네바학파 사람들도 프랑스를 오가며 주로 프랑스문학을 제 작업의 질료로 삼았다. 이 도시가 프랑스에서 가깝고 프랑스어권에 속하니 그럴 만도 했다.
■ 스위스의 佛語 사용지역 중 최대 도시
스위스의 공용어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망어 넷이다. 최대 도시 취리히와 수도 베른을 포함해 독일어 사용 지역이 가장 넓다.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을 ‘스위스 로망드’라 부르는데, 제네바는 스위스 로망드의 최대 도시다. 다언어 국가라는 점에서 스위스는 벨기에를 닮았지만, 벨기에의 브뤼셀에 견줄 만한 2언어 병용도시는 스위스에 없다. 취리히에선 독일어만 쓰고, 제네바에선 프랑스어만 쓰고, 루가노에선 이탈리아어만 쓰고 하는 식이다.
제네바(Geneva)라는 이름은 이 도시의 영어 엑소님에 가까운 이름이다. 제네바 사람들이 제 도시를 부르는 엔도님은 주네브(Geneve)다. 독일어를 쓰는 취리히의 스위스인들은 이 도시를 겐프(Genf)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어를 쓰는 로카르노의 스위스인들은 지네브라(Ginevra)라고 부른다. 제 나라를 부르는 이름도 언어권에 따라 달라, 스위스 사람들은 구식 냄새가 풀풀 나는 라틴어 이름 ‘헬베티아(Helvetia)’를 해결책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어느 겨울날, 아내는 파리로 되돌아오는 TGV를 타기 직전 코르나뱅역 지하 매장에서 핸드백을 하나 샀다. 우리 형편엔 값을 좀 들인 셈인데, 당연히 스위스 제품이리라 여겼다. 기차 안에서 살펴보니 중국제였다. 세상 어디에나 중국제가 있다! 아내는 지금도 그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 15년째! ‘품질 중국’의 승리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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