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추적 60분은 생소한 지지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늘 있어왔던 인물에 대한 지지가 아닌 익명으로 진행된 정책에 대한 지지율 조사였으며, 문국현 후보가 1위(20.9%), 이명박 후보(17%)와 권영길 후보(14%)가 각각 2위와 3위로 뒤를 이었다.
이 예기치 않은 결과는 유권자들이 정책공약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서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자가 어떤 정책공약을 내걸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금번 선거에서 언론이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제 17대 대통령 선거를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정책과 이슈의 부재, 지지율 조사의 남발, 정치권에 끌려 다닌 언론의 BBK보도가 그것이다.
첫째, 정책과 이슈가 사라졌다. 매 선거마다 언론과 사회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기는 했어도 정책선거에 대한 화두를 유권자들 사이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추적 60분의 정책공약 지지도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 금번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걸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다. 또한 이명박 후보의 최대 공약인 대운하건설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지지 않았으며, 문국현 후보의 4조 2교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유권자도 너무 많다.
이 정도면 언론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다. ‘BBK와 김경준’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는 없었다. 비록 그 내용이 특정 대통령 후보자의 자질검증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하여도 언론은 최소한 선거관련 지면과 방송시간의 3할 정도는 정책과 이슈에 대한 논의를 제공했어야 한다.
둘째, 지지율 조사보도의 남발이다. 다양한 형태의 여론조사보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언론사들은 지지율조사에 올인한 형국이다. 정책과 이슈개발을 위한 여론조사를 실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빙의 승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승자의 유세차에 올라타라는 팡파레 역할을 하는 지지율 조사를 남발한 것은 우리 언론의 여론조사보도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3~4년 전에 비하면, 신뢰수준, 표본의 크기, 조사주체, 조사방법, 응답률 등을 표기하는 여론조사보도의 형식적인 측면은 진일보했다. 그러나 조사결과의 해석에 있어서의 신중함은 여전히 부족했으며 여론조사보도를 지지율조사로 한정하는 행태는 여전했다.
셋째, 정치권에 끌려 다닌 언론의 BBK보도이다. 독자적인 탐사보도가 아닌 여권과 한나라당의 공방에 질질 끌려다닌 꼴이다. BBK 문제는 멀리는 이명박 후보의 서울시장 재직시절에 불거졌으며 가깝게는 올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제기되었다.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 독자적인 조사와 노선을 설정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금번 언론의 BBK보도는 준비 없는 선거보도의 예이며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경우였다.
선거보도에 대한 아쉬움 속에서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유권자는 최선의 후보자를 뽑고자 노력해야 하며 언론은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사회의 공기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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