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노무현 대통령의 BBK사건 재수사 지휘 검토 지시에 이어 이날 밤 늦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특검법안을 받아들여 BBK 특검 도입이 사실상 결정되자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당한 검찰의 반발과 법무부의 고민이 교차했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직후 오후 7시부터 법무부 간부들을 긴급 소집, 수사지휘권 발동 여부를 놓고 3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다. 회의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였고, 밤 9시께에는 “밤 11시에 입장발표 하겠다”고 예고했다가 취소하기도 했다.
정 장관은 이미 “검찰 수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고 밝힌 바 있어, 정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거부하고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오후 10시께 “검찰의 위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쉽게 할 수 없다”며 17일 오전으로 입장 발표를 미뤘다.
회의가 끝난 뒤 정치권에서 BBK 특검법 합의 소식이 들리자 한 법무부 관계자는 “입장 발표를 미루기 잘 했지만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은 거셌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등 BBK 수사팀은 오후 5시께 브리핑을 자청, 이명박 후보의 ‘BBK설립’ 발언이 든 동영상에 대해 “수사 결과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거듭 설명했다.
오전에 한번 설명한데 이어 두번째였다. 청와대의 수사지휘권 발동 검토 소식을 미리 접한 검찰의 선수치기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두번째 브리핑 중 노 대통령의 재수사 지시 소식이 전달되자 한 수사팀 검사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며 불쾌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검찰은 정치권의 수사검사 탄핵요구에 이어 이날 대통령의 재수사 지휘 검토 지시, 또다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특검법안 수용 결정이 숨가쁘게 이어지면서 수사결과를 스스로 뒤집어야 하는 ‘자기부정’의 위기는 벗었지만 반대로 정치권의 색깔 입히기로 신뢰도에 더욱 흠집을 내게 됐다며 격앙된 표정 일색이었다.
특검법은 합의됐지만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법무부의 고민은 아직 남았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BBK수사결과를 둘러싼 국민적 의혹 해소 방안’ 검토를 지시한 이상, 어떤 수준이든 대책을 내 놔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수사지휘권 발동이란 강도 높은 노 대통령의 요구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17일 법무부의 입장 발표가 주목된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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