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경인방송(iTV)이 될 것으로 우려됐던 전주방송(JTV)과 강원민방(GTB)이 방송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방송위원회는 11일 재허가 추천 거부를 전제로 청문(행정기관이 어떤 결정의 타당성을 판단키 위해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을 실시했던 두 방송사에 대해 조건부 추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정파(停波)와 지역민의 시청권 침해라는 사태는 피하게 됐다. 하지만 방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가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iTV학습효과, 꺼낼 수 없는 칼
방송위는 3년마다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 신규 허가에 준하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재허가 추천 여부를 결정한다. 방송사는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사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만큼, 공공성 유지와 시청자 권익 보호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재허가 추천 거부는 방송위가 방송사를 향해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실제 2004년 방송위는 공공성 확보 및 대주주의 경영 개선을 위한 노력 미비를 이유로 iTV에 대한 재허가 추천을 거부했다. 그 결과 인천ㆍ경기 지역 주민은 즐겨 보던 채널을 하루아침에 볼 수 없게 됐다. iTV의 직원들은 긴 실업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채널은 OBS경인TV로 사업 주체를 바꿔 28일 다시 전파를 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방송위를 비롯해 방송계 안팎이 겪어야 했던 진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따라서 JTV와 GTB가 거듭된 공공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재허가 추천을 따낸 것이 결국 추천 거부의 후폭풍을 두려워한 방송위의 ‘몸사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제2민방이었던 iTV와 달리 JTV와 GTB가 프로그램의 70% 이상을 SBS 콘텐츠를 재송신하는 사실상 ‘지역 SBS’라는 점도 방송위의 부담을 크게 만들었다. 여기에 대선을 앞둔 시기적 민감성도 추천 거부라는 ‘과격한’ 정책 판단의 장애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명무실해진 재허가 추천제도
JTV 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영방송노조협의회는 재허가 추천 결정 전 “비리와 전횡을 일삼는 사주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며 추천 거부를 주장했다. JTV는 아침 뉴스를 전날 저녁 녹화해 방송하는 등 파행을 일삼았고, GTB는 3년 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재허가 추천 거부 대상이 됐던 대주주 지분 문제를 아직까지 해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위뿐 아니라 노사 양측도 실제 추천 거부를 감수하려는 의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사의 경영진은 청문절차에까지 이르자 방송위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꿨고, 노조도 ‘추천’ 결정이 나오자마자 “미흡하지만 방송위가 내건 조건들이 실행될 수 있도록 추동할 것”이라며 수용 입장을 밝혔다. 양사의 경영진과 노조, 방송위가 기세등등하게 격돌했지만 결국 3년 간의 ‘시간 벌기’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한 모양새다.
따라서 재허가 추천제도가 3년마다 되풀이되는 형식적 ‘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재허가 추천이 거부될 경우의 후속조치를 규정함으로써 사업자와 시청자의 혼란을 최소하하고, 법제도의 실효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가추천 거부 즉시 신규사업자 공모를 실시하고 구 사업자에게는 6개월 간의 임시 면허를 허용하는 등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허가 추천 과정에서 시청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미국과 같은 재허가 거부 청원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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