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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5년 후에는

입력
2007.12.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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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금, 미국에서는 내년 말 치러지는 대선 본선에 나갈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한창이다."이렇게 재미없는 선거는 처음"이라는 말이 귀에 익은 때문일까. 대세가 기운 듯한 우리 선거보다 대반전의 기운으로 요동치는 미국의 선거판에 눈길이 향한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독주가 이어질 것 같던 민주당에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강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공화당에서도 초반 이변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개신교 목사인 마이크 허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몰고 온 돌풍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선두 유지를 위협하고 있다.

4년 전 미국은 보수와 진보의 지독한 이념 전쟁을 치렀다. 이라크 전쟁이나 경제 문제가 대외적 이슈를 선점했지만 밑바닥에선 낙태나 동성애 같은 가치의 충돌이 표심을 흔들었다.

공화당의 선거 귀재 칼 로브는 그런 유권자의 마음을 읽었다. 보수주의자들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편가르기에 더욱 매달렸다. 망설이는 보수주의자를 투표소로 끌어내면 승리할 수 있다는 그의 전략이 적중하던 날 그는 '영원한 보수'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했다.

그러나 정치는 살아 움직인다고 했던가. 공화당 철옹성을 얘기했던 로브의 예언은 2~3년만에 흔들리고 있다. 두터운 보수의 벽 앞에서 "20년 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좌절했던 민주당은 백악관 재탈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다급한 쪽은 공화당이다. 4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선의 공신이었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낙태를 찬성하는 가톨릭 신자 줄리아니를 신뢰하지 않는다.

레이건 향수를 간직한 영화배우 출신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과 모르몬교 신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갸웃하더니 드디어 개신교 목사인 허커비를 찾아 보수 부활을 꾀하고 있다.

미국식 가치 전쟁의 흐름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이념이 한쪽으로 기운 듯하면 돌려 놓고 모자란 듯하면 채워놓는 견제의 작동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 기저에 정책과 가치의 문제를 두고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에 진지하게 진행해온 논쟁이 켜켜이 쌓여 있음은 물론이다.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선거전도 유례없이 보수와 진보의 세싸움 양상을 띠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이념의 승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언제 분배와 성장을 두고 제대로 논쟁을 했던가. 사회적 가치와 정의의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토론했던가. 오로지 북한에 대한 태도로 편을 가른 것은 아닌가.

이념과 정책 토론이 실종된 빈공간을 오직'한방'이 차지했다. 도덕성을 의심 받는 이명박 후보는 불의의 일격으로 부동의 1위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정동영 후보나 한나라당을 탈당해 정통 보수를 외치는 이회창 후보 모두 자신들의 열세를 만회할 한방에 매달렸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재고 정책을 따질 틈이 허용되지 않았다.

전기톱과 쇠줄, 고함과 격투, 7년의 동영상, 선거를 불과 2일 앞둔 시점의 특검법 통과. 우리의 유권자들은 내일이면 어두운 잔상을 안고 투표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미 누더기가 된 대선판에서 유쾌한 마음으로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5년 후에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지도자를 뽑을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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