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55)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명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2) 제1부총리가 ‘푸틴 총리론’을 언급하면서 대통령과 총리의 역학관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에서 낙승이 예상되는 ‘대통령 메드베데프’ 정권에서 총리로서 권력을 수렴청정하리라는 것은 예상되는 수순이지만, 현 헌법상 대통령보다 아래로 돼 있는 총리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이양하는데도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 권력은 총리에 두되, 형식적으로는 현재의 대통령 지위를 유지하는 ‘이중권력(dual power)’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는 후계자 지명 직후 “현 정부의 정치ㆍ경제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새 대통령을 뽑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밝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문제는 ‘이중권력’이 야기할 수 있는 권력의 불안정성이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호감을 갖고 있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 ‘독점 민주주의’가 특징인 푸틴 대통령과 정책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가 가장 큰 난제다.
영국의 전설적인 하드록 그룹인 ‘딥 퍼플’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메드베데프는 미디어와 기본권에 대한 국가통제를 완화해 개방된 민주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 중앙집권적 권력을 추구하는 푸틴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군과 보안 계통 출신의 권력집단인 ‘실로비키’의 조직적인 반발을 메드베데프가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총선 이전부터 크렘린은 세르게이 이바노프(54) 제1부총리를 지지하는 ‘실로비키’와 메드베데프처럼 자유주의 성향을 보여온 관료주의 집단 간 권력암투의 치열한 각축장이 돼 왔다.
예상을 깨고 이바노프 대신 메드베데프가 후계자로 낙점되자 실로비키의 반발이 거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기 정권이 실로비키와 메드베데프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간 세력 다툼으로 얼룩질 경우 메드베데프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려는 푸틴의 계획에도 차질이 올 수 있다.
푸틴을 정점으로 한 실로비키는 후계자 자리를 메드베데프에게 뺏겼지만, 크렘린의 주도권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메드베데프를 실로비키의 공격에서 보호하고, 한편으로 실로비키의 섭섭함과 권력에 대한 야심을 적절히 해소하는 것이 푸틴 대통령에게 당장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푸틴 대통령이 ‘막후 실력자’가 아닌 ‘조정자’가 돼야 한다는 시각은 이런 배경에서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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