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정부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사업으로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 개발사업’을 선정했다. 목으로 꿀꺽 삼키기만 하면 고통 없이 장 진단을 할 수 있는 캡슐형 내시경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사업단 출범 당시 정부와 연구진은 영화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 처럼 소화기관 안을 돌아다니며 진단하고 조직검사를 하고, 투약까지 하는 ‘똑똑하고(지능형) 작은(마이크로) 로봇’을 10년 뒤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쯤이면 고통스러운 내시경 진단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 기대는 얼마나 현실화 됐을까. 이너>
■ 국내외 제품 경쟁 각축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태송 단장이 이끄는 사업단은 올해 초 ‘미로’를 ㈜인트로메딕을 통해 상업화해 포르투갈 스웨덴 체코 등 유럽에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10일 밝혔다. 국내 병원에는 5월부터 선을 보여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서울순천향병원 등 20여곳에서 미로를 이용해 진단을 하고 있다.
국내·외에 시판중인 캡슐형 내시경으로는 미국 기븐이미징사의 ‘필캠’, 일본 올림푸스사의 ‘엔도캡슐’이 있다. 필캠은 2003년부터 이미 국내 병원에 진입했고, 엔도캡슐도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화는 다소 늦었지만 미로는 필캠이나 엔도캡슐보다 월등한 해상도와 구동시간,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최근 유럽에 출시하자마자 호평을 받았다고 김 단장은 설명한다. 필캠과 엔도캡슐이 6~8시간 동안 6만 화소급 영상을 4만~6만장(초당 2장) 찍을 수 있는 반면 미로는 11~13시간 동안 10만화소급 영상을 10만장 이상(초당 3장) 찍을 수 있다.
환자는 허리에 찬 8GB의 메모리에 이 방대한 정보를 저장한다. 미로는 길이 2.4㎝, 지름 1.1㎝로 필캠보다 길이가 2㎜ 짧다. 가격은 70만원대(환자의 진단비용은 25만원 정도)로 필캠의 절반밖에 안 된다. 한국의 연구팀과 기업이 최장 구동시간, 최소형 캡슐형 내시경을 반값에 내놓은 것이다.
이처럼 미로가 더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독자 개발한 인체전도 통신방식으로 전력을 극도로 절약할 수 있기 때문. 김 단장은 “기존 내시경은 휴대폰 통신과 같은 RF통신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체내에 미세한 전류를 흘리면 체외에서 그 전위차를 읽어 정보를 영상으로 복원하는 인체통신방법을 독자 개발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 아직은 소장 검사에 한정
캡슐형 내시경의 세계 시장 규모는 올해 약 1,200억원으로 기븐이미징사가 거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는 해마다 30~40%씩 급성장하고 있다. 캡슐형 내시경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미국(점유율 41%)으로, 2010년이면 2,500억원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로도 내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획득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내시경 시장 규모는 1,250억원인데 캡슐형 내시경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극히 미미하다. 인트로메딕 이혜영 상무는 “미로의 경우 병원마다 월 4~5건, 필캠의 경우 월 8,9건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사업단의 첫 계획만큼 캡슐형 내시경이 ‘똑똑하지’ 않기 때문. 즉 국내외 제품을 통틀어 모두 소화기관의 연동작용에 따라 배설될 뿐 스스로 구동장치를 가지고 움직이는 제품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위 검사의 경우 넓은 위 표면을 돌아다니며 훑어봐야 하기 때문에 캡슐형 내시경이 쓸모가 적은 것. 다만 내시경이 들어가기 어려운 소장 검사에 요긴하다. 캡슐형 내시경이 아직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조직을 채취하거나, 병변에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기능도 아직 없다.
■ 구동 기술 개발 가장 앞서
내시경의 이동이 어려운 이유는 한마디로 장 속이 통상 기계가 움직이는 외부 환경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장은 워낙 말랑말랑한 데다 표면에 흐르는 액체로 미끄러워서 마찰력을 이용해 움직이기가 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지네, 거미의 발 등의 모사하는 기술을 이용, 구동기술을 개발했고 현재 돼지 장 속 주행시험까지 성공한 상태다. 김 단장은 “구동 기술은 90% 개발이 완성돼 경쟁사보다 가장 앞서 있다”며 “2년 뒤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캡슐형 내시경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내에서 영상만 전송할 뿐 아니라 체외에서 주는 명령을 수신하는 쌍방향 통신은 이미 개발 완료상태다.
조직을 채취하는 기능은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데다가 내시경 주변기술과 맞물려 있어서 단시간에 캡슐형 내시경에 탑재하기는 어렵다. 김 단장은 “체내에서 자유자재로 운전하면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캡슐형 내시경이 나오면 대장 내시경의 상당수가 이것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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