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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안성호 첫장편 '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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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안성호 첫장편 '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

입력
2007.12.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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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안성호(39)씨가 첫 장편 <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를 냈다. 2002년 소설가로, 2년 뒤엔 시인으로 등단한 안씨는 2005년 “평범한 사람들의 내밀한 환각과 비밀들이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을 독특하게 묘사했다”(평론가 복도훈)는 호평을 받은 첫 소설집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 를 냈고, 내년초 첫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제목처럼 이번 소설은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열여덟살 소녀 마리, 마흔줄에 접어든 전직 대학강사이자 마리의 동거인인 ‘나’, 고해성사 도중 마리를 범했던 고환암 환자인 신부(神父). 삼각관계다. ‘나’는 신부는 물론, 자유분방한 마리의 젊은 연인들에게 끊임없는 질투를 느끼며 애인 단속에 골몰한다.

순결의 계율을 어긴 신부는 그것이 ‘한낮의 실수’였다며 자책한다. “한낮과 한때는 분명 다르오. 한때는 되돌이킬 수 있는 것이지만, 한낮은 내 뇌리에 각인된 죄요.”(33쪽) 죄의식은 깊지만 신부는 마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 기묘한 삼각형은 결국 파국으로 어그러진다. 작가는 이 소설을 “질투와 죄의식이라는, 긍정 아닌 부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나’는 특이한 캐릭터다. 소설 전반부에선 어린 연인의 돌출 행동을 이해하기보단 제어하려들며 ‘나잇값’을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죽음, 연애, 생계 등 무엇에도 연연해하지 않는, 방기에 가깝도록 ‘쿨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복합적 인물을 만들어낸 것은 ‘386세대’-‘나’와 작가 자신이 속하는-에 대한 안씨의 독특한 세대론과 관계 있다. “지금의 40대는 옛날 40대와 다르다. 도시 생활과 그 문화에 익숙하고, ‘갤러그’ ‘PC통신’과 함께 자란 세대다.

구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몸에 익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 시스템에 편입돼 살고 있다.” 제도권과 이어져 있는 끈이 어떤 계기로 끊어질 경우 “하염없이 밖으로 튕겨나갈 세대”라는 것. 예컨대 ‘나’가 마리와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자 어렵게 얻은 대학 강사직을 일말의 해명도 하지 않고 그만뒀듯이 말이다.

선명한 스토리라인, 간결한 단문 등 잘 읽히는 소설의 요건을 갖췄지만 이 책은 쾌(快)하기보단 끈적한 느낌을 준다. 한 인물이 죽는 순간을 “개들은 공터를 돌아다니며 짖어댔고, 태양은 산등성이 뒤로 물러나면서 공터에 뛰돌던 빛을 하루의 수확물처럼 거둬갔다”(242쪽)며 에두르는 시적인 묘사나 대학, 정치, 종교 등 다방면에 걸친 녹록지 않은 사유의 편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 쓰는 자의 소설이라 지루하다”며 겸양하지만, 그것이 안성호 소설의 남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말대로 서사가 아닌, 각각의 문장과 단락을 음미하며 즐길 만하다.

안씨는 “쿤데라의 <불멸> 은 내용이 뒤죽박죽인데 잠시 책장을 덮고 행간에 숨은 얘기들을 생각하도록 만든다”며 앞으로 쓰고픈 소설의 지향을 암시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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