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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수능, 그리고 탱자가 된 귤

입력
2007.12.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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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앞으로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앞으로 정책 집행에서 가장 골치를 썩일 분야는 교육, 그 중에서도 대학입시 문제일 것이다. 수능 등급제 파문을 계기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입시 문제가 더더욱 논란을 빚고 비난과 성토와 주장과 우격다짐으로 날이 샐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노무현 정권 초기 여당이 이른바 4대 개혁 법안이라는 것을 가지고 몇 년을 허송세월하던 낭패를 그대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찌 생각하면 사회적 합의가 거의 불가능한 사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약간의 가짜 겉껍데기만 걷어낸다면 그나마 논쟁다운 논쟁이 될 것도 같다. 가짜 겉껍데기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세칭 주요 대학들은 대학의 입시 자율권을 주장한다.

대학이 어떻게 어떤 학생을 뽑든 정부가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21세기에 자율이라는 좋은 단어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다. 외국도 대부분 자율이다. 그러나 그 말을 뒤집어보면 옛날식 본고사를 보이겠다는 것이고, 내신에 있어서 고교 등급제도 하겠다는 것이다.

■ 대학입시 자율화 주장의 허와 실

우리나라 대학들에게 자율권을 주었을 때 미국 유수의 대학 식으로 심층적인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본다. 수능(SAT) 만점자가 줄줄이 탈락하고, 전교 1등이 미끄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하버드처럼 하겠는가? 절대 안 한다.

내신은 믿을 수 없으니 수능 위주로 뽑겠다고 하면서 수능 등급제는 또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하면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까다롭게 해서 대단한 학생들을 뽑았는데 왜 서울대생이 하버드대생보다 낫다는 소리는 없을까?

그렇게 자율을 주었을 때 본고사 대비 과외가 다시 극성을 부릴 것은 뻔하다. 본고사 대비 과외가 학생들의 창의력과 학력을 진정으로 향상시키는 공부라면 오케이다. 그런데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 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충분히 예상되는 부작용이랄까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래도 대학에 맡기고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면 대화가 된다. 결국은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고, 다수결의 문제니까.

또 하나. 내신을 중심으로, 수능을 보조적인 수단으로 해서 학생을 뽑도록 한 현행 대입 제도를 계속 시행하면 과외가 줄어들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아마 어떤 제도를 시행해도 과외는 잘 줄지 않을 것이다. 과외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정부나 제도 탓이 아니다. 땅덩어리는 좁고 인구는 많고 사회가 알아주는 대학의 수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교육을 통한 출세라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유전자는 가처분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더더욱 왕성하게 발현된다. 고교 졸업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일류대를 향한 꿈은 그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미국의 SAT가 한국에 오면 과외를 동반하는 수능이 되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가 한국에 오면 역시 과외를 동반한 논술고사가 된다. 미국 대학은 학생 선발이 완전 자유지만 본고사 보고 고교 등급제 하는 학교는 없다.

■ 창의성ㆍ학력 높이는 길 찾아질까

199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전 KAIST 총장은 한국적 입시 현실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회 전반의 발전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용기와 신념을 가진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성적 위주의 평가 시스템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똑같은 기준으로 성적을 매겨 점수가 높은 학생들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방식의 교육이라면 인구 3만에 불과한 소도시에서 평범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나 역시 기회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어쩌랴. 여기는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마음껏 책 읽고, 마음껏 운동하면 일류 대학 갈 수 없는 한국인 것을….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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