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엑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좌초, 약 3만6,000톤의 기름이 유출됐다. 약 1,700㎞의 해안선이 오염됐고, 약 320㎞는 발을 딛기 어려울 만큼 오염 정도가 심각했다.
이 사고는 이윤을 탐하는 대기업이 불러일으킨 환경재앙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엑손사는 직접 비용으로만 약 35억 달러를 지불했다. 기름제거 및 청소작업에 21억 달러, 환경 복원에 10억 달러, 어업보상금 2억6,400만 달러 등이었다. 이와 별도로 징벌적 보상금 50억 달러가 청구됐고, 지난해 12월 25억 달러로 확정됐다.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펠리컨과 독수리, 바다표범 등의 보도사진으로 유명했던 이 사고로 바다새 25만 마리, 바다표범 300마리, 해달 2,800마리, 독수리 250마리, 범고래 22마리 등이 죽었다. 이 때문에 사고 직후에는 주변 생태계가 괴멸적 파괴를 겪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또 각종 생물집단에 미칠 장기적 악영향을 완전히 치유하는 데는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이듬해의 공식조사 보고서에는 '생태계의 분명한 회복 전망'이 언급됐다. 자연 스스로 손상을 치유하는 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하며 정유시설을 파괴해 일으킨 원유유출 사고는 규모 면에서 엑손 발데즈호 사고의 25배에 달했다.
약 90만톤의 기름이 걸프 만으로 흘러든 인류사상 최악의 해양 원유오염 사건이다. 그러나 94년에 실시된 대대적 조사 결과는 가장 낙관적인 예측보다도 나았다.
해수의 유류함량은 미국이나 영국 연안보다, 수중 유류 잔존물 함량은 발트해보다 낮았다. 95년의 최종 조사에서는 가장 피해가 심각한 간석지의 생물다양성이 청정 해안의 83~100%에 이르러 놀라움을 던졌다.
■이런 통계도 있다. 연간 유조선 세척으로 바다에 유출되는 유류는 연간 100만 톤에 이른다. 유조선에 의한 원유 유출은 이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한꺼번에 쏟아져 바다의 자연 분해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심각할 뿐이다.
엑손 발데즈호 사고로 죽은 25만 마리의 새는 미국에서 1년 동안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 새보다 적고, 영국에서 2년 동안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는 새보다 적다는 얘기도 있다.
태안반도 앞바다의 원유오염 재앙을 가벼이 보자는 게 아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절망하지만 말고, 자연의 힘에서 희망을 보고 최선의 방재노력을 기울이자는 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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