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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49>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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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49>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입력
2007.12.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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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一山)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탐구당)는 한국인이 저술한 최초의 한국 의학통사다.

1966년에 완간된 이 책은 의사학(醫史學)의 기초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연세대 의대 의사학과 여인석 교수는 “<한국의학사> 는 한국의학사 연구에 기념비적 업적이고, 의학사뿐 아니라 1960년대 이루어진 국학 전반의 연구성과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여 교수는 특히 “한국의학사 연구를 발전시키는 일은 김두종의 업적을 어떻게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책 이전에도 한국의학사를 쓴 글이 없지 않았다. 일제시대에는 최남선과 이능화가 한국의학사에 관한 단편적인 글을 남겼다. 또한 홍이섭은 일제시대에 한국과학사에 관해 발표한 글을 모아 해방 후 최초의 한국과학통사인 <조선과학사> 를 펴냈는데, 이 책 일부에 한국의학사를 다루었다.

그러나 한국의학사에 관한 본격적인 저술은 김두종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졌다. 김두종은 6ㆍ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그 동안 이루어진 고려시대까지의 연구성과를 묶어 <한국의학사(上中世編)> 를 펴냈다. 이어 60년에 근대 서양의학의 도입을 주제로 한 소책자 <한국의학발전에 대한 구미 및 서남방 의학의 영향> 을 낸 뒤, 66년에 한국의학의 모든 시기를 다룬 노작(勞作) <한국의학사(全)> 를 간행했다.

김두종이 한국의학사를 서술하는 기본 관점(史觀)은 그의 학문적 경쟁자였던 미키 사카에(三木榮)의 노골적인 식민사관에 대립해 한국민에 의한 자주적인 의학 발달을 강조하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미키의 <조서의학사> 고대편은 <일본서기> 등 일본의 고대사 관련 자료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한국 고대의학사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한사군의 지배 사실을 강조해 우리 의학의 자주적인 발전 양상보다는 중국의 영향이나 지배를 강조했다. 특히 <조선의학사> 는 우리나라 역사시대가 한사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고 고조선을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치부하는 등 우리 고대사를 왜곡했다.

반면 김두종은 <한국의학사> 에서 이런 점을 과감히 탈피해 고조선을 역사시대로 받아들였으며, 문헌 자료가 없으면 유물 자료를 통해 한반도의 의료활동 흔적을 가능한 한 앞선 시기에서 찾았다. 그래서 신석기시대 유물인 폄석(砭石ㆍ돌 침)을 침술의 기원으로 보는 증거로 제시했다.

김두종은 책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단순한 기술사보다는 역량이 미치는 대로 우리의 문화ㆍ사상적 배경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의학사’를 써보려 했다. 의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료가 워낙 적어 방계 자료를 원용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선사시대와 고대의학사를 서술하면서는 이런 노력의 흔적이 나타났다.

하지만 관련 사료가 많아지기 시작하는 고려시대부터는 서술의 갈래를 잡지 못하고 단순히 사료나열식에 그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저술ㆍ간행된 의서들이 많아지는 조선시대에는 각 의서의 서지학적 정보와 목차, 간단한 내용 소개가 주종을 이루고, 제도사와 관련해서는 각종 법전이나 실록 등에서 뽑은 내용이 나열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학사> 에 나타난 이런 한계는 저자의 책임이라기 보다 시대ㆍ환경적 제약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는 평가다. 여인석 교수는 “개별적인 연구성과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의학사> 를 서술했기 때문에 가공되지 않은 1차 사료들의 홍수 속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역사상을 끌어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60년대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던 국사학계의 실증사학적 분위기도 혼자 힘으로 뛰어넘기 힘든 시대적인 제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한국의학사> 는 거의 1차 사료만으로 토대로 저술됐기 때문에 한계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1차 사료에 충실했기 때문에 역사서로서의 생명력을 더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책 이후 통사를 표방하며 간행된 적잖은 한국의학사 책들이 1차 사료 활용도에서 이 책에 미치지 못했으며, 이 책을 요약ㆍ정리한 수준에 그쳤다.

김두종이 의학사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은 100% 순수한 우리 고유의 것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우리 의학의 독창성을 부각하려 노력하면서도 국학자에게서 흔히 우리 것에 집착하는 국수주의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우리 의학이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인도 의학, 고려시대에는 중국과 아라비아 의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그는 또 우리 의학에 큰 영향을 준 중국의학 도 인도나 아라비아,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민족보다는 학문이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족만 강조하면 학문의 자유도 침해 받고 학문 자체도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 김두종 연보

1896년 함안 출생

1916년 휘문의숙 졸업

18년 경성의전 입학

24년 일본교토부립 의전 졸업

39년 봉천만주의대 동아의학연구소 연구원

47년 조선적십자사 보건부장

47년 서울대 의대 교수

53년 한국의사학회장

54년 <한국의학사(상중세편)> (정음사) 출간

60년 숙명여대 총장

60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63년 성균관대 이사장

66년 <한국의학사> (탐구당) 완간

88년 타계

▲저서

<한의방골학의 연구> (1945) <한국의학발전에 대한 구미 및 서남방의학의 영향> (60) <한국의학문화대연표> (66)

■ 여인석 연세대 교수가 말하는 김두종 선생

"학문을 접을 나이인 43세에 의사학 공부를 시작해 94세로 타계할 때까지 50년 동안 내내 한 길을 걸었지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의사학을 전공한 여인석 연세대 의대 의사학과 교수는 우리 나라 의사학 효시이자 태두인 김두종 선생을 이렇게 말했다. 여 교수는 "50세만 넘으면 공부를 접는 학계의 조로 풍토에 비춰 볼 때 김 선생은 가히 사표가 될 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던 시기인 해방 이후와 1950년대에 전혀 매력 없던 분야였던 의사학에 매진한 것은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경이롭다"고 말했다.

김두종의 생애는 ▦의사가 되기까지 ▦중국에서의 연구 활동 ▦해방하고 귀국 후 한국의사학 연구 활동 등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14세(1910년)에 경남 함안군 칠원면의 칠원보통학교에 들어가 3년 만에 졸업했다. 김 선생 자신의 회고처럼 중학교 들어갈 나이를 넘어 비로소 보통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만학의 길은 계속 이어져 평생 과업인 의학사 연구도 마흔이 넘어서야 시작했다.

선생은 휘문의숙을 졸업(16년)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 전신)에 입학(18년)했지만 3ㆍ1운동에 참가해 퇴학당했다. 우여곡절끝에 29세(24년)에 교토부립의대를 졸업해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의술을 펴기보다 연구에 뜻을 굳혔다. 43세(38년) 때 만주의대 동아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의사학을 본격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45년 해방 직후 귀국해 한국 의학사 연구에 본격 매달렸다. 이 같은 노력은 71세(66년)에 노작 <한국의학사> 와 그 자료집인 <한국의학문화대연표> 를 펴내면서 열매를 맺었다. 은퇴했을 나이인 77세(73년)에는 <한국고인쇄기술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을 잇따라 집필했다.

김 선생은 학문적 열정을 쏟으면서도 서울대 의대 교수로 국내 최초로 의사학교실을 만들고 대한의사학회 창설을 주도했다. 제2대 서울의대 부속병원장, 한국전쟁 중에는 전시연합대학으로 서울대 서울분교장을 지냈다.

이어 숙명여대 총장과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대한의학협회장, 성균관대 이사장 등도 역임했다. 친구였던 외솔 최현배는 "원만한 인격과 너그러운 금도, 능숙한 수완의 소치"라고 평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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