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을 낮추고 학교생활기록부(내신) 위주의 입학 전형을 골자로 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제도 개선안’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내년부터 처음 도입되는 ‘수능 등급제’가 시행 첫해부터 타당성 논란에 휘말려 있고, 정시모집을 코앞에 둔 주요 대학들은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로 내신을 불신하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새 대입안은 누더기 신세로 전락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때문에 “새 대입안이 추구하는 고교교육정상화는 물건너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 대입제도를 표류하게 만들고 있는 주범은 수등 등급제다. 교육부는 2004년 수험생을 성적으로 한 줄 세우는 점수제를 없애는 대신 비슷한 점수대의 학생을 같은 등급으로 묶는 영역별 등급제(1~9등급) 도입을 발표했지만, 결과적으로 발목이 잡혔다.
수능 위주의 입시 제도를 개선하는 데 ‘공’을 세울 것으로 기대했던 등급제가 오히려 새 대입안 정착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으로 둔갑한 꼴이다.
7일 수능 성적이 발표된 이후 1, 2점 차이로 등급이 바뀌거나, 총점(원점수)에서는 앞서면서도 등급에서는 뒤지는 현상이 빚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제도 도입 취지는 실종되어가는 분위기다. 교육부 고위관계자 조차 “솔직히 등급제가 이처럼 골칫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혼란스러운 새 대입안에 유행처럼 번진 주요 대학들의 수능위주 선발과 내신 외면이 기름을 부었다.
교육부는 “새 대입안이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으려면 수능 보다는 내신 위주의 선발이 바람직하며, 전형에서 내신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대학들을 ‘설득 반. 협박 반’ 작전으로 몰아 붙였지만 실패로 끝났다.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주요 사립대학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정시모집에서 수능성적 만으로 선발인원의 절반 가량을 뽑는 수능 우선 선발을 도입했다. 반면 내신 등급간 점수는 1점 미만(1~2 상위 등급 기준)의 ‘쥐꼬리’ 수준으로 결정했다. 주요 대학 입장에서는 새 대입제도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수능 등급제 파장도 따지고 보면 새 대입안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학들의 이 같은 ‘나홀로 전형’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K대 총장을 지낸 교육학자 A씨는 “주요 대학들이 수능을 최대 전형요소로 삼는데, 상위권 학생들에게 점수제와 등급제는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며 “수험생들이 1, 2점 차이로 등급이 떨어진데 펄쩍 뛰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등급제 혼란이 확산되고, 대학들의 ‘수능 중시, 내신 무시’ 전형이 계속되며, 교육부는 ‘나몰라라’로 일관하는 한 새 대입안은 좌초할 게 뻔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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