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걸림돌이었다.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이후 10년 동안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비준을 거부한 미국이 이번에도 ‘나홀로 행보’를 계속하며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포스트 교토의정서’의 로드맵 도출을 목표로 전 세계 180여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3일부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약칭 발리 기후변화회의)가 미국과 유럽연합(EU),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14일 보도했다.
회의 마지막날인 14일까지 미국과 EU는 핵심 쟁점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둘러싸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EU는 선진국들이 1990년 배출량 기준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5~40%까지 감축할 것을 주장한 반면 미국은 자율적 감축을 고수하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것에 반대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내 조국이 발리 회의의 진전을 이끌어내는데 걸림돌”이라고 비난했다. EU도 미국이 로드맵 도출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내달 하와이에서 열리는 환경정상회담에 불참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으나 미국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 대표단의 폴라 도브리안스키는 “발리에서 모든 이슈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며 “이번 회의는 2009년까지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기후협약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며 EU의 비판을 일축했다.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청정에너지 기술 이전도 선진국과 개도국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환경단체와 중국 등은 선진국의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으나 미국 일본 캐나다 등은 경쟁력 상실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주요 쟁점에 대한 미국의 반대는 캐나다 일본이 융통성을 주장하며 추가 감축의무를 회피하게 만들었고 중국 인도 등이 감축의무 이행 대상국으로 참여하는 것을 막는 빌미로 작용했다.
결국 이번 회의는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입장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절름발이 회의’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참가국들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적ㆍ역사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뒤 “참가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이번 회의에서 제지, 철강, 시멘트 등 주요 산업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합의는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발리 회의의 성과로는 삼림 훼손 방지를 위한 기금 조성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교토의정서 서명 등이 꼽힌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12일 열대우림 국가의 산림훼손을 막기 위한 1억달러 규모의 기금과 온실가스 감축국들의 배출권 판매를 지원하는 2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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