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충남 태안군 이원방조제 앞 갯벌. 뿔논병아리로 보이는 물새 한 마리가 굴양식장 근처 물가에서 힘없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김신환(55ㆍ수의사) 서산ㆍ태안 지역 환경운동연합 야생동물구조팀장이 급히 뜰채와 흰 수건을 들고 그 쪽을 향해 질퍽한 갯벌 위를 한 걸음씩 힘겹게 이동했다. 그러나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풍이 부는데다 갯벌이 허벅지까지 빠져 불과 10여 미터를 앞에 두고 다가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뿔논병아리의 날개가 힘없이 탁 꺾였다. 물속에 잠겨 미동도 하지 않자 김 팀장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바로 앞에서 (물새가) 죽어가고 있는 걸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으니 속이 터진다”고 했다.
조그만 배 한 척만 있었더라도 눈 앞에 죽어가는 물새 한 마리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미련이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갈매기 4, 5마리가 바다 위를 날고 있었는데 모양새가 영 신통치 않았다. 김 팀장은 “기름을 먹어서 저렇다”며 “사람이 우선인데, 새한테 관심이나 있겠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지역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고를 수습하려는 민ㆍ관의 손길이 바빠지고는 있지만,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채 고통받고 있는 동ㆍ식물에게까지는 아직 그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현재 태안 지역엔 해조ㆍ해초류 200종과 해양동물 344종이 서식하고 있다. 동물ㆍ환경 전문가들은 기름유출 사고로 이 지역 해양 생태계가 대거 붕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어패류의 폐사만 문제가 아니다. 김경출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팀장은 “갯벌 및 해중 서식 생물 폐사 및 1차 생산자인 플랑크톤과 해조류 오염에 의한 광범위한 해양생태계 파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황인영 인제대 교수는 “물고기와 달리 조개 등의 패류는 그 자리에서 기름의 영향을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운이 좋아 살아나더라도 번식력ㆍ산란률이 모두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안 지역에 서식하거나 이 곳을 지나가는 조류의 생존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태안 지역은 철새들이 주로 지나가는 곳인데 다행히도 대부분 철새들은 현재 이곳을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며 “철새들이 돌아오게 될 내년 5월까지 기름 제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시아에 서식하는 철새의 80% 정도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씨프린스호 사고가 발생한 여수 앞바다는 개방형 해역이지만 태안 앞바다는 남쪽으로만 개방된 반폐쇄성 해역이어서 유출 원유가 장기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오후 태안군 문예회관에서는 ‘서해기름오염복구 초기 문제점과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한편, 해경은 유처리제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에 대해 “유처리제는 엄격한 생물독성시험을 거친 형식승인 제품”이라며 “유처리제의 2차오염은 덩어리 기름 자체보다는 피해가 적다”고 반박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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