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밭에 나가기만 하면 하루생활비를 벌었는데 이젠 무얼 가지고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
12일 오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마을 공동 굴 양식장에서 만난 문용배(67)씨는 양식장 지주에 매달려 새까맣게 죽어버린 굴 꾸러미를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올해 수확을 앞둔 굴 양식장은 기름냄새만 물씬 풍겼다. 원유가 스며든 갯벌에는 입을 벌린 바지락, 기름에 녹아 죽은 낙지, 크고 작은 게가 깔려 있다. 옆에서 양식하고 있는 바지락과 가리비도 모두 폐사했다.
공동양식장 1㏊에서 하루 하루 굴을 따서 번돈 2,000만원으로 1년을 살아야 하는 문씨 내외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수협 빚 5,000만원 가운데 연말에 상환해야 할 영어자금 500만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이 오지 않는다.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 경조사비도 걱정이다. 며칠 뒤면 담배 살 돈도 떨어질 지경이다.
그는 원유가 덮친 이후 양식장에서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는데도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수시로 양식장을 둘러 보고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고 있다.
이날 새벽녘 높은 물때로 인해 원유가 또 다시 도로를 넘어와 양식장 옆 산 끝 자락까지 밀어낸 모습을 보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말없이 양식장을 바라보던 눈에서 또다시 물기가 스치는가 싶더니 그는 굴 껍질에 묻은 원유를 정성스레 닦아 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껍질을 까보았다. 무지개 색을 띤 기름기가 굴의 속살에서 나오자 “이것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부 죽지는 않았겠지”라며 혼잣말을 하며 양식장 이곳 저곳을 다니며 성한 것을 찾아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요즘은 동네사람끼리 만나도 양식장 얘기는 한마디도 안 혀. 말해봤자 서로 속만 더 상하니께.”문씨는 “나만 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문씨의 굴밭은 그에게는 전부였다. 그가 이곳에 자리잡은 건 40년전이다. 당시 도시에서 살던 문씨는 연로한 부모와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을 챙기기 위해 아내를 설득, 귀향했다.
빈손으로 귀향한 문씨 부부는 10여년동안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뱃일과 바지락, 낙지잡이 등 험한 일을 다하며 고생한 끝에 28년전 지금의 굴밭을 겨우 마련했다. 굴 껍질처럼 갈라진 손끝과 손톱의 모습이 그간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듯 했다.
이렇게 마련한 굴밭에 의지해 3남매를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비용도 마련해 주었다. 최근엔 막내아들도 번듯한 직장을 잡아 동네에선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가끔씩 들르는 손자 용돈도 굴밭에서 나온 것이다.
문씨는 “굴 양식장은 막내가 결혼하고 두 내외만 남아도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연금보험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할 일도 없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일이 걱정”이라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태안=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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