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고로 서해안이 기름바다가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196억원을 들여 만든 첨단방제선은 무용지물이었다. 당초 국가방제능력이 1만600톤이라며 장담했지만 정작 필요할 때에는 작동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5만톤 이상의 대형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300~500톤급 중ㆍ대형급 방제선을 올 초까지 4척을 건조, 울산항에 2척, 여수항과 사고가 난 대산항에 각각 1척을 배치했다. 196억원의 예산이 소요된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헤베이 스피리트호 사고를 놓고 보면 이 방제선들과 방제 장비들은 있으나마나였다. 지금까지 거둔 514톤의 기름은 대부분 해안으로 밀려와 바위ㆍ모래에 엉긴 것들을 삽으로 떠내거나 손으로 걷어내는 등의 원시적인 방법으로 회수된 것들이다.
방제선 4척, 선박 80척, 유회수기 149대 등의 고성능 장비를 갖춰놓고도 12년 전 씨프린스호 사고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1995년 당시의 방제장비는 오일펜스와 20여대의 유회수기가 전부였다.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장비는 현장에 투입되긴 했지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조합은 해양오염에 대비해 해양수산부가 설립한 산하기관이다.
조합 관계자는 “방제선에 장착된 유회수기는 바다가 잔잔하고 유출된 원유가 고점도 일 때 효과를 내는데, 이번 사고는 불행하게도 이 모든 조건을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며 “사실상 방제선과 유회수기는 쓸모가 거의 없었다”고 시인했다.
유회수기는 드럼, 디스크, 브러쉬 모양 등의 기름 흡착부분이 반복적으로 바다 위의 기름을 묻혀 올리면 스크래퍼로 회수하는 장비다. 결국 1만6,600톤의 국가방제능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바다가 잔잔해야 하고 기름이 드럼통 등 흡착면에 잘 묻는 특정 종류여야 한다는 뜻이다. 95년 당시 1,300톤에 불과하던 국가방제능력은 2007년 현재 1만6,600톤으로 향상됐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된 셈이다.
하지만 조합 관계자는 “기상 상황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는 선진국의 방제선과 유회수기가 투입됐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충남 태안의 한 어민은 “잔잔한 바다에서만 유회수기가 작동한다는 것은 훈련상황에서나 가능한 방제능력이다”며 “수시로 바람 불고, 파도 치는 현장에서 제 기능을 못하는 장비를 믿고 국가방제능력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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