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경영대가 학비 차등화를 제안했다가 쑥 들어간 적이 있다. 학점에 따라 우수한 학생에게는 학비를 안 받거나 덜 받고 못하는 학생에게는 더 받는다는 제안이었다.
고려대가 포기한 이 정책을 카이스트는 실행키로 했다. 카이스트가 10월에 개정한 학칙에 따르면 1년간 성적이 평점 C(4.3만점에 2.0) 이하인 학생은 연간 1,200만원 정도의 수업료를 일부 지불해야 한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지금까지 100만원의 기성회비를 제외하면 학비를 전액 면제 받았다. 카이스트측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기 위해서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학비를 더 받겠다는 제안이다.
■ 미국 일본과 다른 등록금 차등화
성적으로 차별하는 고려대나 카이스트와 달리 도쿄대와 하버드대는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부모님의 소득이 낮은 학생에게 학비를 대폭 깎아주는 제안을 한 것이다.
연소득 6만 달러 이하의 가정 출신 학생에게는 학비를 받지 않는 하버드대학은 내년부터 연소득 18만달러(약 1억6,000만원)인 중산층 학생들에게 부모의 소득 10% 이하로 학비를 깎아준다고 발표했다. 도쿄대는 부모 연봉이 400만엔(약 3,19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 학부생의 학비를 내년부터 면제한다고 지난달초 발표했다.
양 대학은 이렇게 학비를 깎아주는 이유가 모두 가난한 인재들을 놓치게 될 것을 우려해서라고 밝혔다. 한국의 대학도 등록금을 차등화하려는 것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느 쪽이나 인재를 키우고 싶어하는 뜻은 같은데 왜 이렇게 방법이 다른 것일까.
학습에서 경쟁은 필수적이다. 경쟁에 따른 과실이 같다면 누가 더 우수해지려고 노력하겠는가. 경쟁은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동인이니 학생시절에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경쟁의 수준에 있다. 공정한 경쟁은 좋지만 인간성을 파괴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면 사회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도 승자는 무조건 옳다는 극단적인 경쟁심이 도덕성을 마비시키면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덕성이 무너지면 모든 경제 정치체제의 원칙이 무너지고 그러면 그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적절한 경쟁을 북돋는 방식이 정교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 비춰 보면 일본 미국의 명문대에 비하면 한국 명문대의 방책은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까지는 학비 부담이 적으니 가난한 학생도 무리없이 다닐 수 있지만 대학은 그렇지 않다. 학비를 벌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학생도 생긴다.
반면 공부에만 매진하거나 심지어 대학 공부도 사교육의 힘을 빌 수 있는 학생은 학점 따기가 수월하다. 그러니 일단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돈이 없어도 대학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가난한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장학금을 주어야 한다.
헌데 한국사회는 그렇지 않다. 장학금이란 공부를 잘 해야 받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시행이 된다. 장학금의 1차 조건은 학점이지 소득이 아니다. 소득에 따른 장학금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 가난한 학생에겐 장학금이 필수
정부가 기초과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이공계 장학금도 그렇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따면 무조건 받게 되어있다. 집안이 학비를 내고도 남을 만큼 잘 살아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의대나 약대로 전과를 해도 환급을 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그저 공부만 잘 하면 원칙이 어그러져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원칙도 없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를 빚고 그게 자라서 승자가 되면 그만이라는 사고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경쟁을 지원하되 도덕적인 자기조절을 할 수 있는 인재육성방식에 눈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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