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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드라마 한편 때문에… 편성원칙 무너뜨린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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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드라마 한편 때문에… 편성원칙 무너뜨린 MBC

입력
2007.12.1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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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5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열정적인 드라마 팬들에게 그리고 이 나라의 아주 참을성 많은 유권자들에게. 우선 이날,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으로 주목 받던 MBC 특별기획 <태왕사신기> 가 막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바로 같은 날 아침, 지난 몇 달 동안 국민의 관심을 끌어왔던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물론 검찰의 발표로 BBK와 관련된 논란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닌 듯 하다. 검찰의 수사가 철저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며 반 이명박 진영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는 물론 아마도 내년 총선 때까지도 끊임없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찌됐든 5일로, 방송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초대형 기획물은 끝이 났으며, 정치 저널리즘 분야에서 올 한 해 최대의 기사거리였던 사건 역시 한 매듭이 지어졌다.

이제 이런 ‘미디어 스펙터클’들이 남긴 여파를 차분히 성찰해 볼 차례다. 우선 <태왕사신기> 의 방영을 둘러싸고 MBC가 보인 행태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방영분과 관련하여 MBC가 내린 결정은 향후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 제작 및 편성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강력한 시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7일자 <미디어 오늘> 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태왕사신기> 23회 분은 평소보다 20분 가량 늦은 10시 15분부터 방송됐다. 그 이유는 편집을 마친 테이프 입고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편집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MBC를 대표하는 간판 보도 프로그램인 9시 <뉴스데스크> 와 <스포츠뉴스> 시간은 연장됐다.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아직 편집이 끝나지 않은 인기 드라마의 방영 시간을 맞춰주기 위해 메인 뉴스의 시간을 고무줄 늘리듯 늘리다니. 아무리 ‘드라마 왕국’ MBC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드라마가 아무리 방송사의 경영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해도, 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연예오락 프로그램만으로 채널의 정체성과 이미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의 수지라는 것이 인기 연예인 몇 명이 좌지우지하는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쇼 그리고 인기 드라마 몇 편에 의해 맞춰지는 것 같아도, 실제로 방송사의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능케 하는 것은 채널에 대한 시청자들의 –그리고 광고주들의- 근본적인 신뢰다.

그리고 이 신뢰라고 하는 것은 통상 시사교양이나 보도 프로그램들을 통해 쌓아가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9시 메인 뉴스의 역할은 중요하다. MBC <뉴스데스크> 가 그 오랜 세월 동안 텔레비전 광고 단가 책정의 기준 프로그램이 되어 온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수 언론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정치적 편향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MBC가 시청자들 -특히 젊은 시청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신뢰하는 채널로 꾸준히 꼽히는 데는 몇 달간 반짝했다 사라지는 드라마가 아니라 <뉴스데스크> 같이 영속성 있는 간판 보도 프로그램이 핵심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MBC는 외주 제작사에 의해 자신의 편성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을 한탄할 게 아니라 스스로 편성의 원칙을 무너뜨린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정치 저널리즘의 장을 어떤 알찬 기사로 채워갈 것인지 고민하기 바란다. 그것이 공영방송다운, 시청자의 신뢰를 받는 방송사다운 태도일 것이다.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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