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9시20분께 서울 강남구 H고 3학년 1반. 일찍이 자리를 잡은 학생들은 김모 담임교사가 옆구리에 두툼한 서류 봉투를 끼고 들어서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괴성을 질러댔다.
봉투 안에는 지난달 15일 치렀던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들어 있었다. 영역 별로 점수 대신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급만 기재된 성적표였다. 김 교사는 학생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성적표를 나눠줬고, 곧 이어 교실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 두 문제로 '환호'와 '눈물' 교차
첫 등급제로 치러진 이번 수능 뚜껑을 연 결과, ‘예상대로’ 단 한 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바뀌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이모(18)군은 수리 ‘나’와 외국어, 사회탐구영역의 2개 과목에서 1등급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언어영역은 2등급을 받았다.
이군은 “가채점을 했을 때 87점이 나왔는데 1등급 구분점수(컷) 점수인 90점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군은 “서울대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금 성적으론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같은 반의 다른 이모(18)군은 수리 ‘나’와 언어 외국어, 사탐 2과목을 1등급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군은 “언어 영역 가채점에서 90점이 나왔는데, 1등급을 받게 됐다”며 “수능 시험 직후 일부 입시기관이 1등급 컷을 91점이라고 해 가슴을 졸였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날 등급 구분점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부 입시기관들은 수험생들이 받은 성적표를 토대로 등급 구분점수 추정치를 내놓았다.
등급제 불만 확산
일부 영역에서 아깝게 한 두 문제를 놓쳐 등급이 내려간 수험생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답안 표기 잘못으로 가채점에서 96점이 나온 서울 D여고 3학년 정모(18)양은 2등급을 받았다.
정양은 “수리 '가’는 모의고사 등을 치르면 늘 1등급이었는데 너무 속상하다”며 “이 성적으로는 주요 대학의 ‘수능 우선선발제’에 합격하기가 어렵다”고 고개를 떨궜다.
6월과 9월 모의 수능에서 수리 ‘가’와 언어 외국어 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서울 영훈고 3학년 김모(18)양은 수리 ‘가’ 성적이 3등급이었다. “실수로 4점 짜리 문제를 놓친 것을 포함해 모두 3문제를 틀렸다”는 김양은 “상위권 학생의 경우 시험 당일 한 번의 실수로 지원 대학이 확 바뀐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양재고 3학년 정모 담임교사도 “한 과목을 망치면 만회가 불가능한 게 등급제 수능”이라며 “수능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한 상황에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진학지도 탄력 붙을 듯
수능 성적 발표로 한 동안 ‘안개 속’을 헤매던 일선 학교의 진학 지도에는 어느 정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서울 양재고는 3학년 담임교사들이 전체 회의를 거쳐 응시 전략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해 합격을 위한 '최대 공약수’를 도출하자는 의미다. 영훈고 3학년 박정관 담임교사는 “입시학원들이 고3 수험생이 아닌 재수생 위주로 가채점 결과를 수집해 등급구분표(배치표)를 만드는 바람에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며 “정확한 성적 분포가 나온 만큼 진학상담을 본격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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