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입장에서는 전율할 문장을 만나거나, 뒤통수 후려치는 생각의 전환을 경험하는 때가 책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가장 황홀한 경험 축에 들 것이다. 그러나 직접 글을 쓰기도 하고, 잡지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남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몇 번 겪고 보니 또 다른 황홀경이 존재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서 3년 반 가량 유학을 했는데, 논문 쓰기의 하이라이트는 서문도 아니요, 본문도 아니요, 오로지 ‘감사의 말씀(acknowledgement)’에 있다는 소신을 그 때 굳혔다. 굳이 카프카를 불러들이지 않아도, 책 쓰는 이들은 종종 자신이 벌레가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책 더미 틈새로 느리게 움직이며 발달해 가는 것은 충혈과 돌출이 일상화된 눈뿐이니, 이러다가 어느 날 책갈피에 코를 박고 육체가 말라버린 한 마리 갑각류로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경외감을 느낄 만큼 숭고한 문체나 절대 무너지지 않을 논증을 만족스럽게 구사한 날에도, 아직 이 작업이 종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가슴을 뜯게 된다. 그 오지 않을 종말을 마침내 선언하는 것이 바로 ‘감사의 말씀’인 것이다.
유학 기간 중에 나는 두 번 졸업 논문을 썼다. 매번 정말 희열감에 가득 차서 ‘감사의 말씀’을 썼다. 나의 공부를 도와준 사람들, 기관들을 일일이 거명했고 특별한 인연을 잊지 않고 언급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끝까지 유보해 두었던 대상들, 나의 아이와 아내에게 최상의 찬사를 바침으로써 ‘감사의 말씀’은 화룡점정을 완료한다. 그 한 줄로 인해 논문 쓰는 동안 가족들에게 저지른 글쟁이의 만행과 유기(遺棄)는 ‘행복한 추억’으로, 학문의 발전 같은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된다.
나는 지금도 책을 집으면 그 대목을 눈 여겨 본다. 그 부분을 허투루 넘어가는 책은 쉽게 쓰여진 책이니,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주변의 꽤 많은 저자들이 “사실은 그 마지막 문장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책을 쓴다”는 양심 고백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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