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플레셰르 지음ㆍ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발행ㆍ488쪽ㆍ9,800원
프랑스 소설가 알랭 플레셰르(63)의 2004년 장편 <도끼와 바이올린> 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자체가 교향곡을 닮아있는 작품이다. 도끼와>
유태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선생인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은 각각 ‘1933년 : 소설’ ‘1944년과 그 이후 : 역사’ ‘2042년 무렵 : 헛소리’란 표제를 단 3부로 구성돼 있다. 각 부는 모두 다음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계의 종말은 나의 창문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어디에서든 시작되어야 할 일이었다.”
1부는 중부 유럽의 게토(유태인 거주지)에 살던 ‘나’의 집 창문 아래서 연주회를 관람하고 귀가하던 젊은 연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시작된다. 그 느닷없음 때문에 ‘도끼’라 이름 붙여진 이 재앙은 순식간에 수많은 희생자를 낸다.
작가는 재앙의 원인이 음악에 있다며 음악 금지와 지하 연주자 색출에 나서는 당국과, 음악이야말로 재앙에 맞서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게토의 현자 ‘샤만스키’를 맞세워 정치적 알레고리를 엮는다. 이런 수법은 전 인류가 시력을 잃은 상황을 설정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1995)를 떠올리게 한다. 눈먼>
더불어 작가는 ‘나’와 ‘에스테르’란 젊은 여성간의 분열적 관계를 설정한다. ‘나’는 자신의 가정부, 피아노 제자, 연인을 에스테르란 동명의 세 인물로 여기지만, 사실 에스테르는 한 사람뿐이며 ‘나’의 조카이기도 하다.
이런 자기기만적 인식이 그녀의 신변 변화로 흔들리게 되는 2부에서 ‘나’는 꿈 속에서 독일 나치 장교가 돼서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그녀에게 갖은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내용의 2부에 작가가 ‘역사’-어디에서든 종말이 시작될-라는 표제를 단 것은 의미심장하다.
에스테르와 음악이란 자연(自然)을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질서에 편입시키려 할 때 세상의 종언을 앞당길 비이성과 폭력이 발생하고야 마는 것이다.
2042년 중국의 숲 속에서 130세가 된 ‘나’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난교(亂交)를 벌이는 3부의 장면은 긴박하고 암울한 1, 2부를 지나 미래에의 전망을 틔우는 ‘희망의 3악장’ 같은 느낌을 준다.
서사나 알레고리에 너무 치중하지 말고, 작품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문장마다 담겨 있는 작가의 사유를 음미하는 것이 음악을 닮은 이 소설에 적격인 감상법이겠다. 소설뿐 아니라 사진, 영상, 설치미술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작가는 작년 11월 한국에서 사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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