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란 고립정책을 고수해온 조지 W 부시 미 정부가 “이란은 2003년말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는 ‘국가정보평가 보고서’를 공개한 배경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정보평가의 공개로 자신의 대이란 강경노선이 ‘근거 없다’고 공격 받게 될 것임을 몰랐을 리 없다.
이 같은 혼란스러운 정황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정보평가의 공개를 최종 승인한 사정이나 여기에 ‘감춰진’ 의도가 향후 미국의 정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4일 인터넷판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번 정보평가 공개의 배후에서 최종적으로 승인 신호를 보냈음은 분명하다”면서 “정보평가 공개로 이란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어 타임은 이번 정보평가 공개를 네오콘(신보수주의) 강경파들에 대한 ‘부시의 배반’이라고 표현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는 등 이란과 맞설 것으로 여겼던 부시의 변화에 네오콘들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같은 종파인 이라크내 시아파들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고 레바논 내 친 이란 무장조직인 헤즈볼라가 즉각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는 등 중동 전체가 전화에 휩싸일 수 있음을 우려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뿐만 아니라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 대부분 이란의 과격 노선을 경계하면서도 미국의 대이란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란에 대한 무력사용이 현실화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타임은 임기 말에 처한 부시 대통령이 이 점을 인정,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는 네오콘들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고 결론짓고 이란의 핵개발 우려를 현저히 낮추는 정보평가를 공개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는 달리 부시 대통령의 이란 정책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는 점에서 정보평가의 공개를 부시 대통령에 대한 정보 기관들의 ‘반란’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정보평가는 미국 정책의 전반적 재평가를 요구하는 폭발적 상황 변화”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고 보고 있으나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이 어려워졌다는 점에서는 정보평가 공개를 부시 대통령과 정보기관들의 ‘합작품’이라고 여기는 전문가들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번 정보평가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대이란 강경노선에 대한 국제적 지지는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4일 기자회견에서 “이란은 여전히 위험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으나 중국은 “상황이 새로워진 만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에 따른 결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강경책 고수 입장에 제동을 걸었다.
다만 이 같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도 불구, 이란이 우라늄 비밀 농축을 강행하고 있는 데 대한 명확한 해명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갈등과 반목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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