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중심의 서양철학에 대한 비판의 틀이자, 중국적 사유방식의 특징을 ‘상사유(象思惟)’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온 왕수런(王樹人ㆍ71ㆍ사진) 중국사회과학원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세계석학초청강좌의 일환으로 이틀간(4,6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강연할 예정인 왕 교수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언어중심, 논리중심의 서양철학이 유용하겠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으로는 상사유의 전통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사유란 문자 그대로 인간이 직관적으로 인지한 상(象)을 통해 사고를 전개하는 사유다. 언어로는 쉽게 개념화하지 않는 사유로 도(道), 기(氣), 성(性) 등 비실체적인 중국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모두 상사유의 산물이다.
그는 “상사유는 언어나 논리가 생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인류공통의 본질적인 사유로 각 민족에서 구전되는 신화가 상사유의 대표적인 창조물” 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이 이성적 논리와 개념적 사유방식을 발전시킨 반면, 중국은 오성(悟性)과 시의(詩意)를 특징으로 하는 상사유를 발전시켰다는 것.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중국경전 대부분도 상사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헤겔철학 전공자였던 그가 중국의 전통적 사유방식에 천착하게 된 시기는 독일 뮌헨대에 교환교수로 파견됐던 1980년대 중반이다. 당시 독일학생들에게 전공인 헤겔에 대한 강의와 중국전통철학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헤겔강의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면, 중국철학에 대해서는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오성(悟性)이란 대체 무엇이냐”고 비판했지만 그는 그 때 “중국철학자로 내가 개념화하고 체계화해야할 것은 중국전통의 사유”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논리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중국전통의 사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인들, 서구화된 현대 중국인들의 태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그는 “그러나 이미 19세기부터 쇼펜하워, 니체, 하이데거 같은 서양의 대사상가들은 이성중심의 서양철학을 비판하며 동양적 사유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가령 서양문화의 위기를 맞아 하이데거는 신을 찾았는데 그가 찾은 존재는 서양의 신이라기보다는 천도(天道)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 왕 교수의 생각이다.
왕 교수는 “상사유에 논리적인 서양문화의 사상관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적 경지까지 통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급격한 서구화로 전통사상과 인식론적 단절을 겪고 있는 현대 중국인과 한국인들 모두 이를 명심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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