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지난 20~30년간 구스타프 말러 열풍 탓에 손해를 본 작곡가가 있다면 브람스와 브루크너일 것이다.
브람스는 베토벤을 잇는 적자(嫡子)로서 보수적 악풍과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지닌 반면, 보다 근대적인 말러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이 드높은 이상을 향해 힘겹게 나아간다는 이미지로 투영되면서 골수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공연 횟수나 신보의 양에 있어서도 브람스는 말러에 밀려 퇴조하는 인상이었다.
브루크너의 경우 인지도와 인기는 계속 상승해 왔지만 항상 말러보다는 후 순위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종교적 구원을 노래하는 듯 장엄하고 감동적이지만 일종의 동어반복적인 고지식함이 한계인 양 받아들여졌다.
정명훈의 서울시향이 올 한해를 브람스 시리즈로 장식한 것은 국내 음악 팬들에게 독일 음악의 본고장을 다시 찾아간 듯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마침 해외에서도 브람스의 인기가 다시 상승하는 조짐이 보이니 다행이다.
브루크너 교향곡은 2005년 제주시향이 최초로 일련의 시리즈를 기획하더니 올해 대풍년을 이루었다. 수원시향, KBS교향악단도 장기 레이스에 나선 것이다. 말러 교향곡 시리즈로 한국 오케스트라 공연사에 새 트렌드를 제시했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이들보다 늦긴 했지만 11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드디어 브루크너 대장정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날 부천 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오르간 음향을 연상시킨다는 브루크너 교향곡에 있어서도 금관악기의 빵빵한 울림보다 현악기군의 유려한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역시 독일 전통에 입각한 음악은 귀에 들리는 소리보다 추상적인 내면이 중요한 것이고, 부천 필은 이런 점에서 크게 기대된다.
한달 전 부천시민회관에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를 본 감동도 다시 밀려왔다. 오케스트라 피트도 없는 낡은 극장의 객석 1층 앞부분을 비우고 그 자리에 부천 필 단원들이 앉은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공연 자체는 놀라웠다. 세비야의>
세계적 수준의 로시니 테너 강요셉이 그 자리에 있었고 로지나, 피가로, 바르톨로, 바질리오 등 다른 배역도 캐릭터를 잘 살린 캐스팅이었다. 젊은 연출가 이경재는 전통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오페라 부파(코믹 오페라)의 잔재미를 세심하게 설계했다. 관객들의 환호도 대단했다.
부천 필에서 비롯된 부천의 도시문화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낡은 시민회관을 대체할 수준급 공연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니 안타깝다. 서울에 와서 공연할 때나 주목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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