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BBK 사건 발표가 TV로 중계된 5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 창가에 특별수사팀 소속 검사 12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발표가 끝난 뒤 특별수사팀장이자 사건 주임검사였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병풍처럼 검사들을 앉힌 데는 이유가 있다"며 "출신, 정치적 지향성, 종교, 신념이 다른 검사들이 수사에 참여했고, 모두 결론에 동의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예상되는 정치적 역풍에 견딜 수 있을 만큼 수사결과를 자신한다는 상징적 제스처였던 셈이다. 김용철 변호사와 같은 내부 고발자가 어디서 튀어나올 지 모르는 요즘 시대에 BBK 사건 처리가 증거가 아닌 정치적 배경에 따라 이뤄졌다면 검사들 중 몇몇은 참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최 부장의 예상대로, 6개월간 정치권을 들끓게 했던 'BBK 한 방, 헛방'공방에 검찰이 종지부를 찍자 한나라당을 제외한 각 정당은 '이명박에 굴복한 정치 검찰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쏘아붙이고 있다.
특히 이명박 후보 낙마를 위한 네거티브전에 주력해온 대통합민주신당의 충격은 크고 깊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인 5일 정오 무렵, 명동 입구에서 마주친 신당 지도부 인사들의 지원유세에서는 대선전의 최대 동력을 잃은 신당의 상실감과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이 자리에서는 "검찰의 횡포에서 민주주의를 구해야 한다" "진실 외면하는 정치 검찰 규탄한다"는 외침이 이어졌고, 이날 밤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는 '수사 무효' '진실 승리'구호가 난무했다. 정동영 후보는 6일 음모론을 거론하며 "권력의 하수인인 정치 검찰을 탄핵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전에서 지지율 열세 만회는 신당에 내려진 지상과제다. 그런 점에서 검찰 수사결과를 맹비난하며 '이명박 대 반(反) 이명박' '부패 대 반 부패'구도를 조성해 다시 한번 대반전을 모색해야 하는 신당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거론하며 수사결과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정치 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특별검사 도입까지 추진하는 것은 5년간 집권한 여당과 여당 후보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치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일 검찰이 이 후보 관련 의혹을 인정했다면 검찰에 대해 온갖 칭송을 늘어놓았을 테니 말이다.
과거 두 차례 대선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보로 국민적 비난과 외면을 받았던 검찰로서는 원죄의 업보가 클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BBK 수사에서 검찰이 여당 주장대로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흔적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마당에 검찰 수사결과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사실과 다른 부분, 잘못된 부분을 따지지는 않은 채 무턱대고 선입견과 심증과 이미지 만으로 수사 검사들을 정치 검찰, 정치 검사로 몰아세우는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가족 사기단이라는 명백한 증거와 진술조차 부정한 채 금융 사기꾼의 사기 행각을 좇아 검찰만 공박한다는 것은 공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대선전은 이제 불과 2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6개월 동안의 기나긴 네거티브 공세에 대선전에 대한 유권자들의 식상함은 더해 가고 있다. 남은 며칠 만이라도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과 토론을 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대선 때마다 검찰에 대선전의 운명을 맡기는 후진적 정치문화를 깨는 첫걸음 아닐까.
황상진 사회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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