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김(43)씨는 왜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을까. 전 BBK 대표 김경준(41ㆍ구속기소)씨의 누나인 김씨가 6일로 예정했던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의 이날 기자회견은 여러 모로 주목을 끌었다. 우선 김씨 입장에서는 이번 기자회견이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검찰이 김경준씨의 주장을 '거짓말'로 규정한 상황에서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는 공개 석상에서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을 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적인 입장이었다는 얘기다.
'예고편'의 강도가 높았던 점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김씨는 검찰의 결론을 반박하고 "검찰이 진술을 번복할 경우 형량을 낮춰주겠다고 했다"는 김경준씨의 메모를 입증할 수 있는 녹음테이프 등 물증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만일 녹음테이프에 검찰 관계자의 '회유공작' 육성이 담겨 있다면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돌연 회견을 취소했다. 김씨의 처지 등을 감안할 때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예상보다 훨씬 구체적인 결론과 근거를 내놓은 데 대해 충격을 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자신들의 범죄가 뿌리부터 파헤쳐진 만큼 저항할 힘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검찰이 자신에 대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기로 한 점 등을 감안, 신변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은 이미 김씨를 김경준씨의 증권거래법 위반 등 혐의의 공범으로 판단한 상태다.
마땅히 내놓을 것이 없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김씨 측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연루 의혹을 입증할 결정적 물증으로 이른바 '주식거래 이면계약서'를 제시했지만 검찰은 위조 문서라고 판명했다.
김씨 측이 여전히 이 후보 연루 의혹을 사실로 믿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입증할 물증이 없다면 더 이상의 저항은 불가능해진다. 녹음테이프가 있다 해도 김씨와 김경준씨간 통화 내용을 담은 것이라면 '김경준 메모'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물론 '비장의 무기' 중 어떤 것을 내놓을 지에 대한 최종 숙고작업 때문에 기자회견이 연기됐을 수도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물증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명확한 것을 추리고 추린 후에 내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김씨는 이대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질까, 아니면 보란 듯이 다시 등장할까. 김씨의 향후 거취는 이번 사건의 마지막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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