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이 난에 쓴 '구세주 신드롬의 온상'(11월14일자)이라는 글을 보고 한 선배가 '메아리에 대한 메아리'라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앞 글의 요지는 참여정부가 자랑해온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로드맵이 사실상 겉치레로 끝나 대기업의 하도급 횡포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한숨은 여전하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요즘 대선 국면을 지배하는 맹목적 경제 지상주의의 한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공감을 표시한 그의 답글은 대기업 이상으로 관료사회도 중소기업을 등쳐먹지만 보복이 두려워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현실을 전했다.
■ 대기업에 치이고 관료에 멍들고
그는 중소기업에 대해 대기업은 상전으로, 관료는 하늘로 행세하는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한다고 했다. 10년을 다녀도 급여가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초임에도 못 미치고, 늘 밥줄이 끊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약자를 괴롭히는 그들이 싫다고 했다.
주변에서 "너와는 상관도 없는데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자신들만의 '배부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는지, 서글프다고도 했다.
올 봄 같은 난에 '좀비 중소기업과 몽유병 대기업'(3월24일자)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한 정당에서 대선 공약을 만들던 친구가 찾아왔다.
경제의 모세혈관격인 중소기업이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신세가 되면 대기업도 결국 몽유병 환자처럼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글에 대해, 그는 언론이 말로만 상생 운운하면서 실제론 대기업 편향 보도를 일삼아 오히려 건강한 산업 생태계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의 이율배반적 태도 때문에 정당의 정책에서도 중소기업은 찬밥이라고 열을 올렸다. 정치인들이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면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지만, 속으로는 이해관계가 복잡해 별로 흥행이 되지 않는 주제라고 여기는 까닭에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벤처업계도 NHN 등 성공한 몇몇 기업 위주로 인력과 시장이 짜여지는 바람에 '빌 게이츠가 와도 성공할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했다고 했다.
며칠 전 본보에 보도된 사례는 '2007년 겨울, 한국의 중소기업'을 잘 보여준다. 세제용품 용기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S사의 경우 최근 국제원유값 급등으로 원료인 폴리에틸렌 하이덴 값이 2004년 초에 비해 70% 이상 올랐지만 그 동안 납품단가는 10% 인상에 그쳐 직원 임금을 동결하고도 4년째 적자다. 원료를 공급하는 재벌계 화학기업에 값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처지도 아니다.
결국 고유가 부담은 양쪽 대기업 사이엔 낀 S사에 모두 떨어졌다. 특허침해 및 기술ㆍ인력 빼돌리기, 일방적 발주 취소, 무분별한 사업영역 확장 등 대기업의 교묘한 횡포에 시달려온 중소기업 입장에선 이 정도는 그래도 양반 축에 속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주요 대선 후보들은 어느 때보다 풍성한 중소기업 공약을 흩뿌리고 다닌다. 표밭 성격이 가족ㆍ성공ㆍ안정ㆍ행복 등 소시민적 슬로건과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성장동력과 사회통합 측면에서도 역할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공약이 대부분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 등 고답적 처방에 그친 것을 보면, 문제 인식의 정도가 낮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이 세계 제일인 독일 일본 등의 사례를 깊이 연구한 흔적이나, 선순환적 기업 생태계 착근을 위한 치밀한 디자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대선후보들 고답적 처방만 남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엊그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성장해 3만달러 시대를 열려면 전 산업에서 초일류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초일류기업의 3대 특성으로 산업 주도, 초우량 경영프로세스, 장수를 꼽았다.
그러나 국민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이 말이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수많은 중견ㆍ중소기업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계 속의 삼성'을 뒷받침해온 그들의 피와 땀이 제대로 보상 받았다고 여기겠냐는 것이다. 현대차 등 다른 재벌기업과 거래하는 협력ㆍ하청업체에게 이 질문을 던져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문제를 알았으니 이번 대선에서 명확한 대안을 찾아보자.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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