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월 18일 한 특강에서 야당이 외환위기 이후 10년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잃어 버린 게 뭐냐, 있으면 신고하라, 찾아 드리겠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발언 3일 후인 21일 한나라당은 저성장과 양극화, 세금 폭탄과 생계비 폭등, 부동산 가격 폭등, 사교육 팽창,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증가 등 '10가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신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맞서 청와대는 한달 후인 11월 21일 한나라당 신고에 대한 반박자료를 내는 등 외환위기 이후 10년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선거 정국과 맞물려 첨예한 이념적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상반되는 듯한 양측의 주장 속에서도 공유하는 현실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 기업과 금융의 경쟁력은 향상된 반면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통계로 나타난다. 잠재성장률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인 실질 설비투자 증가율은 5공화국 시절 연평균 14.9%였으나 계속 하락해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시절에 0.6%까지 떨어졌다.
참여정부 들어 3.9%로 다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양극화 현상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비정규직의 규모도 참여정부 초기 384만명에서 올해 577만명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면 외환위기 직전 무려 347%에 달했던 매출상위 1,000대 기업의 부채비율은 2006년 83%까지 떨어져 재무구조가 나름대로 건실해졌다.
또 은행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997년 7%에 머물렀으나 2006년에는 12.75%까지 향상됐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내실을 다시는 동안 잠재성장률 하락과 중하위계층의 몰락이라는 대가를 치른 셈이다.
이처럼 과거 10년의 공과가 끊임없이 '이념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차기정부의 국가운용 방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앓아온 병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그 처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잃은 것은 잠재성장률로 요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적어도 6%는 나와야 하는데, 외환위기 이후 '우기기ㆍ떼쓰기'가 통하고, 투기세력이 성공하는 사회풍조가 만연하면서 기업가는 사업할 의욕을, 근로자는 일할 의욕을 급속히 잃어 성장률이 4%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국가 기강이 흔들림이 없어 성장률이 낮아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국민소득이 2만5,000~3만 달러를 달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10년간 정권의 인기 영합적 정책이 국가경제의 활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시각이다.
반면 전상인 홍익대 경제학교수는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 자체가 정치적 수사"라며 "한나라당이 집권했으면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을 유추해야 야당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의 목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우선 비정규직 확대 등 형평성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한나라당이 집권했다면 더 악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성장률 저하 문제에 대해서는 "생산요소를 집중 투입해 성장률을 높이려는 과거의 경제개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의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성장률 5%대를 유지하는 것은 현 경제성장단계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10년간 시련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중산층ㆍ서민층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10년간 잃은 것과 되찾은 것'을 둘러싼 이 같은 논쟁은 투자확대 등을 통해 경제 활력을 되찾아 안정적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리는 처방으로 이어질 때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논쟁이 될 것이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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