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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배운 것, 시험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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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배운 것, 시험치는 것

입력
2007.12.0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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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입학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음모론이 돈다고 한다. 논술학원을 주름잡는 강사들은 대부분 운동권 출신인데 이들과 친한 386 공무원들이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수능시험을 무력화시키고 논술이 명문대 입학을 좌우하게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 싶으면 386공무원들에게 탓을 돌리는 음모론에 한번도 동의해본 적은 없지만 입시 파행이 오죽하면 이런 말이 돌까 싶다. 현 정부는 수능시험으로 학생들의 실력차를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는 표준점수제를 포기하고 올해부터 등급제를 시행해서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없애버렸다.

표준점수제에 따르면 1점이 모자란 것은 1점이 모자란 효과만 내는데 등급제에서는 자칫 한 등급 아래로 내려가서, 등급에 따라 차등점수를 주는 대학 입시에서 최대 8점까지 손해를 본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경쟁하는 상위권 대학 입시에서 이 차이는 엄청나다.

● 학원만 배불리는 입시정책

수능시험 결과로 실력차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수험생들은 대학이 제시한 논술시험으로 실력 차이를 입증해야 한다. 헌데 이 논술이라는 것을 고등학교에서는 정규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논술학원이 미어터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화아카데미의 교육토론회에 참석한 한 공무원은 수능시험 등급제가 논술시험 의존도가 아니라 내신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서 고안됐다고 밝혔다. 헌데 학교마다 학습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을 바로잡지 않은 상태에서 내신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학생을 실력으로 뽑지 말라는 말이다.

그럴 것이면 뽑기로 대학생을 배정하지 굳이 돈과 인력을 낭비해가며 수능시험을 치를 이유가 없다. 하긴 정부가 지원하는 몇 개 교육토론회가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보면 이미 정부 차원에서 내신 위주의 대학입시를 검토중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입시는 내신 중심으로 갈 수도 있고, 논술이나 수능 중심으로 갈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방식을 채택하든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실력에 근거해서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내신 중심으로만 하고 싶다면 학교마다의 편차를 바로 잡는 일을 적어도 몇 년 앞서서 해놓아야 한다.

학교 편차를 인정하지 않고 내신으로만 학생을 선발할 경우 자칫하면 교육의 질 전체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처럼 학교에서는 논술을 전혀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입시는 논술 중심이 되면 사교육 시장만 커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험치는 내용을 공교육에서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은 객관식 시험과 단답형 주관식에 익숙하게 만들어 놓고 논술의 비중이 커지면 학교 교육만 따르기 힘들다.

학교 시험을 장문형 주관식으로 바꾸고, 수능시험도 장문형 주관식으로 바꾸고, 마침내는 논술처럼 긴 글의 주관식으로 수능시험이 바뀐 후에 대학시험이 논술 중심으로 가야 정상이다.

비단 고등학교 교육만 그런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말하기만 가르치다가 중학교 가면 문법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영어과목, 고등학교 과정에서 갑자기 어려워지는 언어과목 같은 것도 문제이다.

사교육에서도 영어와 논술시장이 커지는 이유가 다 있다. 학원에서 배우지 않으면 메워지지 않는 간격을 방치한 채 정부가 사교육 시장을 잡겠다고 하니 정책이 작동될 리 없다.

● 학교에서 다 배운다면 학원 안 가

물론 처음 논술 시험이 등장하던 때와 비교하면 대학의 논술시험이 많이 쉬워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고전을 토대로 대학교 고학년이나 풀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올 정시에서는 대학교의 논술시험도 가르친 것을 토대로 나오길 바라지만 동시에 교육부는 사교육과의 전쟁을 논하기 전에 초 중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과목이 겅중겅중 뛰어서 사교육으로 틈을 메워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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