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3일 통과시킨 삼성 비자금 특검법에는 범 여권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구석구석 베어있다. 이번 특검은 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과 맞물려 인화력이 큰 에너지를 응축시켜 놓고 있다.
이번 특검의 주 대상은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관련 의혹들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과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대선 잔금' 문제가 정치적 복선으로 깔려 있다.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실제 수사는 대선 이후인 내년 1월 10일께 시작돼 4월말께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정상으로 보면 대선 보다는 총선에 미치는 파급력이 훨씬 커 보이지만 대선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다.
신당에선 '경제 대 평화'라는 대선 구도 싸움에서 패퇴하면서 '부패 대 반 부패' 로 구도를 다시 잡는 계기를 만들려 할 것이다. 지지율 2위인 이 전 총재에게 대선잔금 문제로 타격을 가하고, 대기업 CEO 출신인 이 후보와 한나라당 이미지를 오버랩시켜 '한나라당 = 재벌비호당'으로 몰고 가려 한다.
특히 거부권 행사 움직임을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과 확실한 차별화를 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총선에서도 이 같은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당선축하금'이 포함된 데 대해 친노 그룹의 반발이 가시화되면서 총선 정국에서 내분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한나라당도 대선에선 별로 손해 볼 것이 별로 없다. 특검법 수용에 유연성을 보이면서 '재벌 보호' 비판을 피했고,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로 정국이 시끄러워지면 BBK사건에 쏠린 이목도 분산시킬 수 있다. 특히 총선에서 노 대통령 진영과 이 전 총재를 옥죄일 무기를 한꺼번에 얻은 셈이어서 남는 장사라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의 고민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그 이후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집권에 성공하면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한 쪽에선 국내 최고 기업을 목 조르면서 다른 한쪽으론 경제를 살리자고 외치면 경제드라이브가 걸리겠느냐"고 우려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수사기간이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무려 5개월"이라며 "한 기업을 지나치게 위축ㆍ파탄시키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수사기간에 불만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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