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특검법안이 23일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은 한나라당의 이의제기로 막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삼성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 조성, 청와대와 정치권 로비 등 삼성을 둘러싼 전반적인 의혹을 그대로 수사할 수 있게 됐다.
오전 10시20분 시작된 법사위 초반 한나라당의 말 바꾸기가 시작됐다. 22일 오후 특검법이 소위를 통과한 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 한나라당 의원들은 “하루 전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한 내용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다”며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박세환 의원은 “경영권 불법 승계 부분은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수사 대상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회의에 출석한 정성진 법무장관도 “많은 국민들이 우려할만한 폭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아직 특검 도입을 정당화할 정도로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부각되지 않았다”며 특검에 반대했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신당 이상민 의원은 “어제는 위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잘 합의해놓고 이제와 딴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한나라당은 특검을 하지 말자는 것이냐”고 따졌다.
결국 설전 끝에 2시간여 만에 3당 간사 협의가 이뤄졌고 한나라당이 애초 주장을 누그러뜨리면서 수정안이 합의돼 표결 통과됐다. 본회의에서는 189명 중 155명의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17명이 반대했다. 민노당 관계자는 “이명박 후보가 삼성 특검 도입에 문제를 제기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장을 바꿨다는 얘기가 돈다”고 전했다.
한편 당초 합의안과 달라진 수사 대상도 눈에 띈다. 수정안에 따르면 삼성 이건희 이재용 부자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4가지 사안(삼성 SDS, 에버랜드, 서울기술통신, e삼성)만 수사하게 된다.
애초 안에는 ‘등(等)’자가 들어가 수사 범위에 제한이 없었지만 수사 대상이 한정된 것. 하지만 시민단체가 그 동안 재수사를 요구했던 사안들이 모두 포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이다.
특히 e삼성 문제의 경우 삼성 후계자인 이재용 전무가 투자했다 실패한 지분을 계열사가 인수해 회사에 300억원 안팎의 손실을 끼쳤던 사안으로, 상속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삼성 비자금 부분은 당초 비자금 조성 및 대선자금 문제, 차명계좌, 검찰 수사 등 3개항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합쳤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축하금 문제는 수사 대상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최고권력층 로비자금’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제안이유에서 특검 대상에 ‘당선축하금’이라는 용어를 넣어 수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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