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천 편 / 창작과비평사식민지 아픔, 육화한 서정
1914년 11월 23일 시인 이용악이 함북 경성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좌파 문인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복역 중 6ㆍ25 때 월북한 그는 1971년 사망했다. 1930~40년대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조선의 시삼재(詩三才)로 꼽혔던 이용악이었지만, 그는 이런 연유로 오래 잊혀졌던 시인이다.
그의 시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건 1988년 월북문인 해금 이후다. 그 해 11월 윤영천(63) 인하대 교수가 낸 <이용악 시 전집> 은 <오랑캐꽃> (1947) 등 이용악의 시집 4권과 새로 발굴한 작품들을 한데 모은 성과다. 오랑캐꽃> 이용악>
그의 시를 외면한 시절이 얼마나 반쪽이였는지, 우리 민족의 정서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이용악의 시편은 새삼 깨우쳐준다. 첫 시집 <분수령> (1937)의 맨 첫머리에 실린 ‘북쪽’이나, 이제는 많은 이들의 애송시가 된 ‘그리움’ 같은 순수 서정시가 그렇다. 분수령>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북쪽’ 전문).
이용악 시의 다른 큰 줄기는 ‘북쪽’에서도 비치듯 식민지 현실의 가난과 아픔과 그에 따른 유민(流民)의 실상을 천착한 이른바 유민시, 그리고 해방 후 그의 정치 지향에서 나온 시들이다. ‘낡은집’은 전자의 대표작이다.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낡은 집’ 부분).
하종오 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