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03년 ‘고용이 줄어드는 성장’을 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고용 정책의 틀도 확 바뀌었다. 실직자에게 실업급여를 주는 복지 차원의 소극적 고용 정책이 일자리 창출,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을 포함한 적극적 고용 정책으로 전환됐다.
노동부 산하 고용지원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시켰고, 직업능력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도 대폭 확충했다. 재정을 투입해 사회적 기업(간병도우미 등 사회복지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을 육성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기울였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55) 원장은 “정부의 적극적 고용 정책은 아직 말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적극적 고용 정책을 뒷받침할 만한 다양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올해 자발적 장기 실직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실업급여의 액수와 지급 기간도 늘렸지만 실업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최 원장은 “적극적 고용 정책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전문 인력 충원이 이제야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실직자 등이 적극적 고용 정책의 혜택을 받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급 휴직자에게 실업급여 지급 검토를
최 원장은 적극적 고용 정책에 부응할 수 있는 제도로 ‘무급 휴직자 실업급여 지급’을 내놓았다. 무급 휴직은 다니던 기업이 경영 악화 등으로 인력을 감축해야 할 때 돈을 받지 않고 일정 기간 쉬는 제도다. 최 원장은 “무급 휴직자들에게 정부가 고용보험 기금에서 실업급여를 주면 미국의 레이오프(Lay-offㆍ경영이 호전될 때 재고용 한다는 조건으로 일시 해고하는 것) 제도를 도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직원을 완전히 해고하지 않은 채 경영 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근로자는 생계 유지에 대한 부담을 덜고 복직을 기다리면 된다. 물론 기업이 이를 악용해 유급 휴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모두 무급 휴직으로 돌리는 것을 막는 등의 보완 조치는 필요하다.
최 원장은 “우리나라 고용 정책은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적잖은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은 그 특성상,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따라서 고용보험 기금을 통해 시행되는 각종 고용 지원 사업은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못 내는 영세 자영업자와 많은 비정규직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국내 전체 취업자 2,300만명 중 고용보험 혜택을 보는 비율은 약 37%(850만명)에 불과하다. 최 원장은 “실업급여, 직업훈련 등 사회안전망과 적극적 고용 지원이 더 절실한 근로 빈곤계층이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용 정책의 혜택을 못 받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보듬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금 유연성 높이고 호칭 인플레 줄여야
최 원장은 “임금 유연성을 높이면 중ㆍ고령자 재취업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지 나이가 많고 근속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임금을 많이 받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로는 재취업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설명이다. 즉 근속 기간이나 나이가 아니라 ‘일을 얼마나 잘 하고 어떤 일을 하느냐’ 등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공서열형 임금 시스템에서 기업이 나이 든 사람을 쓰려면 나이에 맞는 직함을 주고, 호봉을 산정하고, 경력도 인정해줘야 한다. 또 10년을 일하나 20년을 일해도 항상 비슷한 생산성이 나오는 직무에 일하는 사람에게도 매년 계속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때문에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서 기업은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새 사람을 뽑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최 원장은 “임금이 직무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되는 구조라면, 기업이 굳이 중ㆍ고령자의 고용을 회피할 이유도 없으며, 비정규직을 남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고령자 재취업의 걸림돌로 ‘호칭의 과잉’도 꼬집었다. 정부가 공모 등을 통해 고령자를 ‘어르신’으로 부르기로 했는데, 기업이 어떻게 감히 ‘어르신’에게 일을 시키겠냐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젊은 부장 밑에서 대리급 중ㆍ고령자가 일하는 것은 어색한 풍경”이라며 “세대간 문화 장벽을 허물고 어른 공경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도 융통성 있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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