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작가들의 작품은 비싸게 팔고, 우리 작가들은 우습게 보니 결국 우리 작가들이 외국 작품을 모방하게 되는 겁니다. 문화적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것을 찾으려는 사람을 독려해야 해요."
한국 화단의 원로 김흥수(88) 화백이 이즘의 미술계 풍토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추상과 구상을 한 화면에 조화시킨 '하모니즘' 창시 30주년을 기념해 만난 자리에서다.
백내장과 척추 수술 후유증에서 회복해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요즘은 특별히 하는 운동도 복용하는 약도 없다"며 "컨디션이 좋을 땐 하루에 다섯 시간도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김 화백은 "외국 유행 사조를 모방하면 앞선 사람이라고 칭찬하던 해방 직후 풍토가 아직도 화랑가에 강하게 남아 있다"며 연신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니 작가들이 자기 것을 하려는 생각들을 안 합니다. 외국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작가들이 있는데도 제 대접을 못 받아요. 삼성미술관도 해외전시만 하고, 들여오는 외국 작가의 10분의 1도 우리 작가들을 수출하지 않습니다."
미술평론가와 큐레이터들도 강하게 비판했다.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각인데 감각은 없이 지식만으로 평가를 하는 평론가가 많아요. 감각은 없어도 영어만 잘하면 해외 유행을 빨리 도입해 큐레이터를 하고 평론가를 하는 실정입니다."
김 화백은 "가끔 전람회에 가보면 '이 작품은 멀리서 보는 게 더 좋다'며 뒤로 끌고 가는 작가들이 있는데 다 엉터리니 속지 말라"면서 "좋은 그림은 멀리서 봐도 좋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좋은 그림"이라고 강조했다.
"그림의 수준은 가까이서 봤을 때 마티에르를 통해 드러나는 겁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전을 봤는데 어느 구석에서 봐도 빠지는 데가 없어요. 색의 조화가 완벽합니다. 그런 게 진짜예요."
그는 최근 저평가된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민중미술이 색을 엉터리로 쓰다 보니 색의 조화를 볼 수 없게 됐지만 그 중엔 일부 좋은 작가들도 있습니다. 임옥상이나 민정기 같은 작가들이죠. 민중미술 작가라고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건 잘못이에요."
누드는 곧 평화이기 때문에 누드화를 자주 그린다는 김 화백은 내년 90회 생일을 기념해 신작을 선보이는 구순전을 준비하고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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