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마취에서 깬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데도 “고통 없는 수술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의사. 어떤 식으로 치료가 진행되는지를 묻는 암 환자에게 “그런 걸 알아서 뭐 하려합니까”라며 호통치는 의사.
자주는 아니지만 아직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학병원의 현재 모습이다.
주치의의 불친절과 설명 부족 앞에서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했던 암 환자들의 불만은 설문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본보의 설문조사 결과 암 환자 절반이 병원에서 가장 짜증 나는 것으로 주저 없이 의료진의 불친절을 꼽았다.
(본보 11월 26일자 16면) 의료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암 극복의 원동력이라는 완치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의료진의 불친절이 치료결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보는 이번 설문조사를 계기로 타의 모범으로 삼고자 할 만한 우리 시대 친절 명의를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인터넷 암 환우회 ‘암과 싸우는 사람들’(이하 암싸사)과 ‘한국백혈병환우회’ 등이 추천한 의사 중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암 전문의 15인을 선정했다.
암싸사 운영자인 이일선씨는 “환자마다 의사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라 평가가 주관적일 수 있지만 이번에 추천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추천글을 종합해보면 환자를 내 가족처럼 위하는 마음을 친절 명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박종욱 삼성서울병원 교수를 추천한 회원은 “의사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권위나 잘난 척, 무뚝뚝함을 박 교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큰 산 만한 궁금증을 갖고 가도 조용히 다 들어주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주치의가 시간 나는 대로 병실에 들러 어머니 손을 잡으며 수술하면 살 수 있다고 설득해 치료를 시작했고, 결국 자포자기하던 어머니의 위암을 고쳤다”며 오성태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보여준 친절에 경의를 표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3명이 명단에 올라 ‘암 치료는 서울로’라는 선입견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을 받기 위해 오래 기다리거나 진료를 받으러 자주 서울을 오가는 번거로움 보다는 그 지역에서 믿을 만한 의료진을 선택해 치료받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4월 뇌종양 진단을 받은 회원은 “정태영 화순전남대병원 교수는 환자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심어주는 의사”라며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자세히 알려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대장암 수술을 받으려고 서울의 대학병원에 갔다가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인근 전북대병원 김종훈 교수를 찾아갔다는 회원은 “실력은 기본이고, 회진 때마다 따뜻한 웃음을 보여준 김 교수를 추천한다”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고 했다.
친절 명의로 선정된 노성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2004년 미국 연수 때 현지 의사가 환자들과 친밀한 가운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을 보고 나도 더 친절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면서 “오전에 80명 진료를 하고 오후에 두세 건 수술을 집도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 환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종섭 강남성모병원 교수는 “암 환자에게 의사는 절대 권력자”라고 전제한 뒤 “환자 앞에서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면 환자는 극도의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소명의식을 갖고 환자의 입장에서 같이 아파해야 하는 것이 의사 된 도리”라며 불친절 의사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암 관련 속설 허와 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에는 가족들과 당분간 접촉을 금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들 가운데는 자신이 받은 방사선의 에너지 때문에 몸이 뜨끈뜨끈해진다든지, 혹은 몸 자체가 방사선을 발산하므로 치료 후에 아이나 가족과 접촉하면 안 된다고 믿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일반 외부 방사선 치료는 몸에 받은 방사선이 전혀 몸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족들과 접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며, 방사선 때문에 몸이 뜨거워지는 경우도 없습니다.
문의 국가암정보센터(1577-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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