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희진 지음 / 황소자리 발행ㆍ256쪽ㆍ1만3,000원
여름 휴가철에 빠지지 않는 가십기사 중 하나가 대통령이 읽는 책에 관련된 기사다. 최고 국정운영자가 선택하는 책은 그 자체로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가 정해진 민주시대의 권력자가 읽는 책도 그러할진데 종신권력자이자 절대권력자인 봉건군주가 고르는 책의 상징성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추론하기는 어렵지 않다.
<제왕의 책> 은 고려와 조선의 왕 10명의 사례를 끌어들여 제왕들이 책을 어떻게 통치에 활용했으며 그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지를 짚어주는 교양역사서다. 제왕의>
두 살 때 글자모양을 만들었고, 네 살 때부터 날이 밝기도 전에 세수하고 일어나 머리빗고 독서에 들어갔다는 조선최고의 호학(好學)군주 정조. 그는 ‘서경’ 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의지를 표시했다. 아버지를 시해한 노론관료들에 포위된 채 즉위한 정조의 정치적 비전은 국왕중심의 정치였고 그 모델은 요순시대였다. 관료들은 서경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는 요순임금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라며 이를 근거로 왕권을 제약하려했지만 정조는 오히려 서경은 요순을 능동적인 정치가로 평가한 책이라는 논리를 개발해 국왕중심의 개혁정치를 시도한다.
영조는 ‘예기’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선왕 경종의 독살주모자로 의심을 받고 즉위한 영조는 재위기간 내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할 부담을 떠앉았다. 예기는 위기탈출의 수단이 됐다. 영조는 신하들과의 경연자리에서 예기를 읽다가 선왕인 경종이 읽다가 끝내지 못한 부분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무고함을 표시하는 노회함을 보이기도했다.
이밖에도 훈구파를 제거하기 위해 사림파들의 윤리서인 ‘소학’을 끼고 살던 성종, 북벌을 위한 노론의 정치적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노론이 왕에 읽히고 싶어했던 ‘심론’ 을 읽었던 효종의 행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총 294권에 이르는 ‘자치통감’을 통독하며 책을 통치를 위한 실용적 도구로 사용한 세종, 아이러니하게도 대의명분을 강조한 ‘춘추’를 술김에 강연하도록한 연산군의 일화 등 왕과 책이 빚어내는 갈등과 조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