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명이요.” “명(命). 본 금강송(金剛松)을 대한민국 사적 제 117호 경복궁 광화문 복원 공사에 쓰이도록 명함.”
29일 오전 11시, 강원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곤신봉. 찬비가 쏟아지는 해발 700m의 대관령 고개에서 김용하 동부지방산림청장이 울긋불긋 삼색끈을 두른 금강소나무 앞으로 어명을 전달하는 교서를 읽고 있다.
어명을 받들어 강릉국유림관리소 직원들이 굵고 곧은 금강소나무에 손도끼질을 하고, 이어 광화문 복원공사를 맡은 신응수 도편수의 지휘 아래 본격적인 톱질이 시작된다. 전동톱이 돌아간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직경 97㎝, 높이 20m, 수령 150년의 잘 생긴 금강소나무가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쿵 쓰러진다. 조선왕조 정궁의 정문에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잇는 보로 사용될 나무다.
광화문 복원에 쓰일 국내산 금강송의 벌채와 위령제 행사가 문화재청과 산림청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벌채에 앞서 예조참판의 제례복을 입은 서승진 산림청장이 초헌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아헌관, 김용하 동부지방산림청장이 초혼관으로 분해 중요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 보존회 제례부와 함께 산신과 소나무의 넋을 달래는 합동 재배를 올렸다.
축문을 낭독한 후 벌채 과정에서 옆 소나무가 다치지 않도록 북어와 창호지를 실타래로 묵는 소지매기가 이어졌으며, 돼지 한 마리가 먹음직스럽게 놓인 제사상 앞에선 민순애 단오제 산신굿 예능 보유자가 한판 굿을 벌였다.
나이테가 조밀해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붉은 소나무 금강송은 재질이 단단하고 통직(通直)해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 받는 명품 수종. 예로부터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였고,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봉정사 극락전 등에도 사용됐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소나무 숲이 무분별하게 훼손되면서 현재 궁궐 공사에 사용될 만한 굵고 곧은 금강송은 강원도와 경북 지역에만 일부 남아 있는 실정이다.
적당한 나무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문화재청은 올 3월부터 산림청과 공동으로 강원도 국유림을 샅샅이 뒤져 직경 50~90㎝의 특대재 26본을 양양(20본)과 강릉(6본)에서 찾아냈다. 흉고직경(사람 가슴높이에서 잰 지름) 90~50㎝로 수령 250~80년에 이르는 이 나무들은 평균 가격이 그루당 800만원, 1㎥당 154만원에 달하는 귀한 것들이다.
현재 마지막 단계인 광화문 복원만을 남겨둔 경복궁 복원공사는 그 상징성으로 인해 전체 공사의 약 95%에 금강송을 사용했다. 산림청은 현재 문화재용으로 공급 가능한 소나무가 약 20만본, 9만㎥ 정도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릉=박선영 기자 aurevoir@hk.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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