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폐암 투병 이청준씨, 새 창작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폐암 투병 이청준씨, 새 창작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입력
2007.12.03 00:27
0 0

“소설집을 묶으려니 한 편 정도 부족하겠다 싶어서 단편 하나 초고 쓰고 다듬다가 병원에 호출됐죠. 그래도 이렇게 중단하면 안되겠다 싶어 마저 마무리 짓고 책을 냈습니다.”

소설가 이청준(68)씨가 창작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열림원 발행)를 출간했다. 2003년 완간된 <이청준 문학전집> (전 25권)에 묶이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된 다섯 번째 책이다.

다른 네 권은 창작집 <목수의 집> (2000), <꽃 지고 강물 흘러> (2004), 장편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2000), <신화를 삼킨 섬> (2003)이다.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단계격인 ‘에세이소설’ 4편을 포함, 총 11편의 단편이 실린 이번 작품집은 이씨가 올해 들어 폐암과 투병하고 있는 와중에 출간한 것이라 의미가 각별하다.

이씨는 늘 써오던 작가 후기 대신 이번 책엔 서문을 붙이고 “스무 권 가까운 창작집과 열 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내면서도 그중 어느 한 권도 누구에게 바친 일이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이제 와서 여기 그 이름들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또 무엇 하리”란 말로 회한을 표했다.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이씨는 정치적 억압에 맞선 문학적 저항,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섬세한 성찰, 한(恨)의 초월적 극복 추구 등 다양한 방향의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하지만 후기로 올수록 정신주의적 경향이 강화됐고, 스스로도 “체험한 것을 축약하려다보니 삶의 무게를 털어내려는 것과 통하게 되고, 자연히 정신주의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인정해왔다. 새 작품집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27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씨는 “우리 문학은 너무 의식이나 정신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것을 넘어선 영혼의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며 이번 책의 지향을 내비쳤다.

그 지향을 ‘신화’라고 불러도 좋을 법하다. 수록 작품 중 그가 투병 중 발표한 최근작 ‘이상한 선물’에서 평범한 시골마을 ‘선바우골’의 원로는 마을이 낳은 ‘천재’-실은 어렵사리 3급까지 지내고 퇴직한 공무원-인 주인공에게 마을 서당에 있던 돌벼루라며 포장된 물건을 건넨다.

동네 인재를 길러낸 음덕을 지닌 영물인 만큼 전설적 인물이 보관해야 한다는 것. 포장을 풀어 돌벼루가 아닌 숫돌임을 발견한 후에도 주인공은 놀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물이 아닌, 그것을 둘러싼 신화적 아우라이기 때문이다. 단편 ‘천년의 돛배’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에서도 작가는 이데올로기보다 한층 더 심화된 형태로 작동하는 신화(설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신화의 형성사를 추적하는 작가의 태도가 넉넉한 것인지 강퍅한 것인지는 더 두고봐야 알텐데 이씨는 “내 눈에 이제 신화, 영혼의 문제가 보이는 걸 보니 여기가 내 소설 쓰기의 낭떠러지인 모양”이라며 “나는 이제 그만 쓸 것이고, 후배 작가들이 잘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디 기자들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모양새 짓는 것 같아 출간 기념행사 같은 건 안해왔지만 기회가 되면 또 이런 자리가 마련됐으면 한다”는 작가의 바람이 신화로 남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