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호주에서 반 부시 성향의 중도좌파 정부가 출범해 미국의 대 중국 아시아 동맹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라크 파견군 철수, 중국 관계 강화 등을 내세운 야당인 노동당이 24일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보수 여당을 누르고 11년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 호주의 친미 외교정책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선거 기간 노동당의 핵심 선거 공약은 ▦이라크 주둔 전투병력 550명 철수 ▦2050년까지 온실가스 60% 감축 ▦교토의정서 비준 등이다.
이는 다름 아닌 미국의 핵심 외교정책과의 정면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존 하워드 총리가 그 동안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등 철저하게 견지해왔던 친미 노선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 상황이다.
특히 호주가 미국의 아시아 경략에 핵심적인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국제 정치에 미치는 파장은 남다르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호주는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아시아 전략의 핵심 고리였다. 더 크게는 '러시아-이란-중국'의 대륙동맹과 '미국-일본-호주-인도'의 해양동맹 간 대결로 일컬어지는 거대한 국제 패권다툼의 한 축이다.
미국이 2005년 말 중국 주도로 결성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대해 중국의 입김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호주ㆍ인도ㆍ뉴질랜드를 '물타기용'으로 끼워넣었던 것도 이 같은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호주가 자칫 동맹을 이탈할 경우 미국으로선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승리로 차기 총리가 될 케빈 러드 노동당 당수가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첫 서방정상이자 중국통이란 점도 예사롭지 않다. 러드 차기 총리가 총선 승리 후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일성을 밝혔지만, 대미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중국 등 동아시아와의 관계 증진에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무성하다.
실제 호주 경제의 장기 호황은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철광석과 석탄 등 자원의 급격한 수요 증가 덕분이었다. 군사ㆍ정치적 동맹은 미국과 맺어왔지만, 밑바닥 경제는 이미 중국과 손을 잡아왔던 셈이다.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 관계 약화를 거론하는 것이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러드 차기 총리의 대외정책이 반 부시 성향이긴 하지만, 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차기 정권을 잡는다면 대미관계가 보다 호전될 것이란 얘기다.
중국과의 긴장 등 그 동안 아시아와 거리를 두고 있던 호주가 아시아와의 관계증진에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호주 국립대의 존 하트 박사는 "하워드는 아시아에 대해 50년대식 태도를 고집한 낡은 총리였다"며 "러드는 변화한 국제 환경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실시된 총선 결과는 현재 노동당이 53.3%, 보수파 집권여당인 자유당ㆍ국민당 연합이 46.6%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7년 간 지속된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보수 여당이 이 같이 참패한 것은 결국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1996년부터 정권을 잡았던 존 하워드 총리는 특히 33년 간 13번의 선거에서 연속 당선됐던 자신의 지역구인 베네롱에서마저 정치 신인에게 패할 것으로 예측돼 이번 총선이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굴욕적 패배로 기록될 전망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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