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계 내부의 자성과 사분오열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국내 최대의 토론회가 열린다.
‘한국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충남대에서 30일과 12월 1일 열리는 한국철학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는 한국철학회, 대동철학회, 대한철학회, 범한철학회, 새한철학회, 철학연구회, 한국동서철학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등 국내의 대표적인 8개 철학회가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내년 8월 세계 철학자들의 올림픽으로 꼽히는 서울 세계철학자대회 개최를 앞둔 국내 철학계가 각종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논의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흥렬 전 포항공대 교수(과학철학)는 ‘한국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발제문에서 ▦대안적 사고의 부재 ▦학문적 순결주의 ▦현실문제에 대한 침묵 등을 우리 철학계의 병폐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 철학계가 칸트면 칸트, 헤겔이면 헤겔이라는 식으로 외국의 철학자들을 학습하는 일에만 몰두해온 것을 병폐로 꼽는다.
이들 이론에 대한 학습과 비판도 철학적 작업이겠지만 그것이 대안적사유로 이어지지 못해 “철학도는 많지만 철학자는 부족한” 모순을 낳았다고 비판한다. 학문적 순결주의도 문제다. 언론매체의 활용이나 기업과의 협력, 공직진출 등을 학문적 외도로 여기는 풍토가 학계전반에 자리잡으면서 철학자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참여범위가 과도하게 축소됐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자기학문에 대한 학자적 ‘순결’을 지키는 일은 가치 있지만 이것이 과도해지면서 현실참여를 거부한 도피주의, 보수주의로 이어졌다”며 “문학인들과 예술인, 대학생들이 앞장서 희생을 감수한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철학자들이 피해왔다는 동료 지성인들의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존적 삶이나 사회적 문제를 토론하는 대신 학문을 위한 학문, 이론을 위한 이론을 나열해 학생들을 철학강의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비정규직 교수문제에 대한 철학계의 무관심을 꼽는 발표도 이어진다.
김원열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한국의 비정규직 교수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적 고찰’을 주제로 한 발표문에서 “철학과의 폐지 등으로 정규직 교수자리가 급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비정규직교수들이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아 정규직교수에 대해 순종과 복종을 표시하는 노예적 상황에 놓인다”며 “자신의 노예적 상황을 인정, 이 문제를 개인적문제가 아닌 사회적문제로 받아들인 뒤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내실있는 철학교육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 중앙과 지방, 논술인증제 도입, 제도권과 비제도권 등으로 대립했던 전국 철학계가 한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1988년부터 전국단위의 철학대회인 한국철학자대회가 진행됐으나 특정대학, 서울지역, 특정학회 중심으로 변질되면서 사회자-발표자-토론자 외에는 참여도가 낮았다. 국내의 대표적인 사회철학회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지난해까지 학회단위로 참가를 거부한 것이 상징적이다.
이삼열 한국철학회 회장은 “학회의 분화와 다양화는 연구활동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이긴 하지만 상호비판, 보완을 위한 대화와 토론의 결핍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 세계철학대회를 앞두고 이번 토론회가 한국철학을 살리고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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