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계수'라는 사회학적 용어에는 실존의 냄새가 묻어 있다. 밥이 먼저냐, 문화가 먼저냐 하는 개인적 삶의 조건이 그 계수에 의해 객관적으로 드러난다.
이 말은 150년 전 엥겔 작센 왕립통계국장이 가계지출을 조사한 후 펴낸 저서 <작센 왕국의 생산과 소비사정> 에서 비롯됐다. 책 내용은 저소득 가계일수록 식료품비 비율이 높고, 고소득 가계일수록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이를 '엥겔의 법칙'이라 하며, 총 가계지출액 중 식료품비 비율을 엥겔계수라고 한다. 작센>
▦ 엥겔계수는 현재도 각국에서 생활수준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쓰인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소득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문화생활 지출이 늘어나면서 엥겔계수가 하락했다. 올해 3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엥겔계수는 25.9%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6% 포인트 떨어졌다.
이 같은 현상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낭보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73만 8,000원으로, 4년 전에 비해 23.8% 증가했다. 이에 비해 월평균 식료품비는 61만 8,000원으로, 4년 동안 13.7%가 느는 데 그쳤다.
▦ 문제는 엥겔계수가 낮아지면서 생긴 여유를 문화가 채워주지 못하는 데 있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문화ㆍ여가생활이 영화관람과 독서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 극장가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7~8월에는 <화려한 휴가> <디 워> 가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예년처럼 400만~5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여유가 생긴 근로자 가족이 돈을 쓰고 싶어도, 마음을 끄는 영화가 별로 없는 것이다. 책 출판시장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디> 화려한>
▦ 사람들은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로 떠난다. 올 1~8월 상품수지 흑자의 77.4%를 서비스수지 적자가 차지했고, 서비스수지 적자의 주범은 해외여행수지다.
더 매력적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해외로 가는 이들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 스스로 문화를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가꾸는 것이 현명하다.
관광이 21세기의 대표적 산업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엥겔계수가 낮아진 것은 반갑지만, 낮아진 계수의 빈 자리는 아직 빈약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문화인들이 분발하고 정부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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