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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군화발에 짓밟혔던 청년 학도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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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군화발에 짓밟혔던 청년 학도의 열정

입력
2007.12.0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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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봄쯤 낱장으로 복사되어 제본도 채 되지 않은 어떤 책 한권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이 나를 처음 번역에 몰두하도록 했던 데이비드 하비의 ‘사회 정의와 도시’이다. 사실 그 때까지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고, 더욱이나 영어는 가장 못했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영어책을 번역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대 석사 과정 학생으로 기숙사 조교를 하고 있었지만, 그 해 오월 민주화의 봄은 신군부 정권의 군화 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혔고, 기숙사를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슴앓이를 했던 나는 가을이 되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쫓기는 몸으로 상계동 자취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할 일 없이 숨어 한 일은 이 책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해 상황이 풀리면서, 석사 논문과 더불어 이 책의 번역도 끝낼 수 있었다. 출판에 난색을 표하며 거절하던 여러 출판사의 태도에 무척 실의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다 마침내 당시 한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던 친구 덕분으로 출판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 때의 기쁨이란….

1982년 8월 영국 유학을 떠났던 나는 그 해 가을 우송되어 온 이 책의 초교지 교정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겨울쯤 출판 검열 관련 부처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는 대학 후배로부터 이 책이 판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 후배는 또한 정말 고맙게도 위험을 무릅쓰고 당시 검열본 원본을 빼내어 영국에까지 보내주었다.

1987년 10월말 유학을 끝내고 귀국했고, 두 달 뒤 이 책이 다른 여러 책들과 더불어 판금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 보면 당시 번역은 무척이나 졸렬했다. 이후 데이비드 하비의 책들 가운데 4권을 더 한글로 번역하였고, 지금도 이 책과 관련된 두 명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최병두 대구대 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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