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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대뇌에 감동을 주는 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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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대뇌에 감동을 주는 대선후보

입력
2007.12.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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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연이어 치러지면서 신경과학 분야에선 '유권자들의 뇌'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유권자들의 대뇌는 어떤 과정을 통해 투표라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가가 최대 관심사다. 지금까지 이 분야 연구자들이 수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의사 결정은 이성적이라기보다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일례로 미국 에모리대학 드류 웨스턴 교수와 그 동료들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2004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부시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모순된 발언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케리 후보가 1996년에는 은퇴연령을 높이겠다는 연설을 했는데 2004년에는 이것과 상반된 연설을 한 경우를 보여주는 식이었다.

그 결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후보가 모순된 말을 했을 때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반면, 공화당 후보가 그런 모순을 범했을 때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을 뇌영상 기법으로 찍어보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된 연설을 들을 때는 부정적 감정과 관련된 신경회로가 꺼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를 긍정적으로 강화하려는 신경회로가 작동했다. 이에 반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모순된 연설에 대해서는 이성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됐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 활성화되는 뇌영역은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자극받는 '쾌락의 중추' 영역으로서, 이 결과는 열렬 지지자들이 후보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열광하는 '정치적 중독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최근 출간한 저서 <감성의 정치학> 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던지는 충고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당의 열렬 지지자들은 신경 쓸 필요 없이, 부동층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공략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대선전략은 무엇일까? 나는 단연 '스토리 텔링'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 에서 인용하자면, 정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넓혀 주지만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하게 만든다. 이야기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영역은 '유권자들을 중독시키는 쾌락의 중추'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우리는 2002년 대선 때 이미 '이야기의 힘'을 보았다. 아들의 병역비리로 도덕적 치명상을 입은 이회창 후보에 맞서 노무현 후보가 단번에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겐 '바보 노무현'으로 표현되는 감동적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낙선을 거듭하고, 5공 청문회 때 날선 목소리를 내던 그의 살아온 이야기는 이회창 후보의 부도덕한 이력과 날을 세워 파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대한민국 대선은 심심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김경준씨와 BBK사건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그의 지지자들을 등 돌리게 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도덕적 결함을 단죄할 만한 상대 후보의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샐러리맨 성공 신화'나 '청계천 신화'에 대항할 진보진영 후보의 근사한 이야기를 기대해 보지만, 이야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관적이다.

<저작권자>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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