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표심이 이번 대선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주의의 지역화’, ‘서울지역주의’라는 다양한 용어를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으로 영ㆍ호남 패권주의로 상징되는 지역주의가 확연하게 약화됐다는 점을 꼽는다.
과거에는 영ㆍ호남의 표심이 수도권의 영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며 수도권은 영호남 민심의 총합체로서의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수도권 여론이 오히려 지방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역전현상 마저 나타나고 있다.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영호남의 울타리에 갇힌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세대 지역주의의 퇴진을 한 원인으로 꼽는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서울 거주 영호남 출신 1세대들은 고령화된 데다가 고향을 떠난지 너무 오래돼 지역색이 약화됐고, 2,3세들은 자신들을 전라도나 경상도 출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정체성은 서울시민이고 따라서 서울이 지역화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지역 맹주 정치의 쇠퇴를 한 원인으로 꼽았다.
강교수는 “김영삼(YS)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영ㆍ호남의 맹주들이 사라진 반면 지역주의를 동원할 만한 새로운 구심점은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도 “호남 출신인 정동영 후보가 호남에선 다른 후보를 앞서지만 호남 출신의 수도권 유권자들은 이와 연동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행정수도 이전은 서울과 수도권이 지역적 정체성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연구실장은 “행정수도특별법 제정과 위헌 파동 등을 겪은 2004년을 기점으로 서울이 지방권력과 대립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역색을 띄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강교수도 “노무현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면서 서울이 지역적으로 예민해졌고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세론의 또 다른 측면으로 지방자치제 출신 지도자의 부상도 거론된다. 김민전 교수는 “이명박 후보의 경우 서울시장 재직시 업무 지지도가 80~90%에 달했다”면서 “서울 주민들은 이 후보의 시장으로서의 업무능력을 평가해 네거티브에 강한 내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선 워싱턴 출신이 아니라 주지사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큰 흐름”이라며 “서울이나 경기지역의 경우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전국을 조망할 수 있는 지역이기에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위력을 떨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20일간의 대선 기간동안 수도권 대세론은 지속될 것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다만 BBK사건과 범여권의 후보단일화가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한 실장은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의 30,40대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집단이었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이들은 ‘도덕적 프레임’ 보다는 ‘경제 프레임’을 우선했지만 이들이 끝까지 이런 태도를 유지할 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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