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이 무정부상태다. 통화당국이 혼란진화를 위해 대규모 자금 살포에 나섰지만, 패닉(공황)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갈수록 얽히고 설키는 채권시장의 복잡한 수급구조상 이 진통은 꽤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약효는 미미했다
한국은행은 28일 1조5,000억원의 국고채를 긴급 매입, 채권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했다. 전날 국고채 금리가 2003년 카드채 사태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채권가격 폭락) 하는 등 채권시장이 비이성적인 행보를 지속하자, 대량으로 돈을 풀어 긴급진화에 나선 것이다.
너도나도 손실확대를 피하기 위해 국고채를 내다파는 상황에서 한은이라도 매입에 나섬으로써 수급 균형을 맞춰, 추락하는 채권값을 떠받쳐보자는 취지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은이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국고채를 매입한 것은 7~8차례. 대우그룹 유동성 위기, SK글로벌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진 직후였지만 당시에도 매입 규모는 5,000억~1조원에 불과했다. 그만큼 이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흥모 금융시장국장은 "한두사람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면서 서로의 손실을 키우기 때문에 그 고리를 끊어주기 위해 국고채 매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한은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채권값이 오르는가(금리하락) 싶더니, 그 약효는 몇 시간도 가지 않았다.
우리은행 김준수 채권운용파트장은 "외국인들이 쏟아내는 국고채 손절매 물량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한은의 대규모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다시 상승했다"고 말했다. 결국 대표 금리인 국고채 5년물 수익률은 이날 또다시 0.09%포인트 치솟으며 연 6.09%로 마감됐다.
채권금리 왜 급등하나
발단은 은행권의 자금부족이다. 예금으로 돈이 몰리지 않자 은행들이 부족한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을 확대하면서, 장단기 채권금리를 연쇄적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금리 상승세를 더 부추긴 것은 국내의 달러 품귀 현상. 급팽창한 해외펀드 등의 환위험헤지(회피)를 위한 달러수요가 넘치는 반면,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은행들의 달러차입(공급)은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달러 수급의 불균형은 금융거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파생금융시장을 일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국내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데 드는 비용이 치솟고(통화스왑금리 급락), 이것이 다시 금리헤지를 위한 이자율스왑 금리를 급격히 떨어뜨린 것.
채권 가격 급락, 스왑 금리 하락에 따른 이중 손실을 견디지 못한 외국인과 은행들은 어쩔 수 없이 손실 확산을 막기 위해 너도나도 국채(선물)를 팔겠다고 나서면서, 국채가격을 떨어뜨리고 금리를 급등시킨 것이다. 여기에 외국은행들이 11월말 결산을 앞두고 손실을 빨리 떨어내기 위해 채권 매도에 적극 나선 것도 금리 상승에 일조를 했다.
한재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은행들의 손절매 물량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다음달에는 시장상황이 안정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가 시장에 있다"며 "하지만 은행 수신 이탈, 해외펀드 자금 쏠림 현상 지속 등 구조적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많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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