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표심이 달라졌다. 17대 대선에서 수도권 표심은 여야 후보들이 표를 균분하는 이전의 대선과는 달리 일방적 지지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서울과 인천ㆍ경기 등 전체 유권자의 48.5%가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 50% 안팎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나머지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합해도 이 후보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24일 본보와 미디어리서치 조사결과 이 후보는 서울에서 48.4%를 기록해 무소속 이회창(14.9%),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7.4%)를 압도했다.
수도권은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앞선 적이 거의 없는 지역일 뿐 아니라, 특정 정파의 석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싹쓸이 승리를 안겨주기 전까지 각종 선거에서 여야의 득표율 차이는 10% 포인트 이내였다. 수도권은 특별한 지역적, 이념적 편향성을 보이지 않아 주요 정당이 지지를 나눠 갖는 곳으로 인식돼왔다.
반면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권의 이 후보 지지율은 예년에 비해 보잘 것 없다. 24일 조사에서 대구ㆍ경북과 부산ㆍ울산ㆍ경남이 각각 서울 및 인천ㆍ경기 보다 낮은 44.9%, 38.9%를 나타냈다. 이전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영남에서 60%대를 유지했다. 이대로 간다면 이 후보는 ‘영남 후보’가 아닌 전대미문의 ‘수도권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다.
왜 수도권에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전문가들은 ▦수도권의 높은 정치의식에 비례한 반(反) 노무현 정서 심화를 바탕으로 ▦ 지역 30,40대 유권자의 경제중시 및 실용적 사고 ▦서울시장을 지낸 이 후보에 대한 ‘우리 후보’ 인식 ▦ 영ㆍ호남 출신 2세, 3세들의 연고의식 희석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민’ 컨설팅 박성민 대표는 “서울 지역주의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교육 부동산 세금 등 구체적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선택은 과거처럼 연고지 기류와 연동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가운데 이 후보가 청계천 복원 등을 통해 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시민들이 그를 서울후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도 “미국에서도 성공한 주지사들이 대선에 출마하면 연고지역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게 일반적”이라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영ㆍ호남의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진 것도 수도권 정체성 형성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수도권 표 쏠림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아 다음 선거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물론 이 후보가 지금처럼 높은 수도권 지지율을 유지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는 별개 문제다. 이 후보에 대한 도덕성 논란과 범 여권 후보 단일화라는 ‘전국적 변수’가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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