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 임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태아 생명 경시 경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태어난 신생아의 80%에 육박하는 태아가 임신중절을 통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같은 비율은 미국, 일본 및 유럽 국가 등 세계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3~4배나 높은 것이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고려대 김해중 교수는 복지부 주최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30일)에 앞서 미리 공개한 보고서에서 2005년 한국에서 시행된 임신중절 건수는 34만2,233건으로 그 해 태어난 신생아(43만8,062명)의 78.1%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김 교수는 “2005년 임신중절 중 기혼 부인은 19만8,515건, 미혼자의 임신중절은 14만3,918건으로 추정된다”며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출생아 대비 많은 수의 임신중절이 시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80%에 육박하는 신생아 대비 임신중절 건수 비율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치다. 세계 각국의 사회ㆍ환경ㆍ물리학 분야 통계를 모아두고 있는 존스턴즈아카이브(www.johnstonsarchive.net)에 따르면 김 교수가 추정한 수치는 미국의 9배, 일본과 영국의 2.5배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 414만3,000명이 태어난 2004년 임신중절은 신생아수의 8.3%인 34만6,000여건에 머물렀고, 일본도 111만명이 태어난 2004년 30만건의 임신중절이 이뤄졌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임신중절의 성격상 정확한 국제 비교가 어렵지만, 한국의 경우 한편에서는 저출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또다른 쪽에서는 사회 재생산의 동력이 될 귀중한 자원들이 소모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태어난 숫자에 버금갈 정도의 태아를 희생시키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혼외 임신에 대한 터부 ▦남아선호 및 생명경시 사상 ▦잘못된 피임 정보 등에서 찾고 있다.
김해중 교수에 따르면 5,903명의 임신중절 여성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40.1%인 2,366명이 ‘미혼, 미성년자, 남편 아이가 아님’ 등의 이유로 시술을 받았다. 지식 부족으로 피임에 실패한 뒤 ‘더 이상 자녀를 원치 않는다’며 시술 받은 경우도 2,487명으로 42.1%에 달했다.
반면 태아의 건강(2.3%), 임신 중 약물복용(9.6%), 강간(0.2%) 등 현행 법령이 인정하는 불가피한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 비율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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