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성증권이었을까.'
검찰 특별수사ㆍ감찰본부가 30일 전격적인 첫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성증권을 택하면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용철(49)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내용에 삼성증권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갑작스레 삼성증권에 대해 "압수수색 필요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우선 검찰이 삼성증권에 있을지 모를 삼성 사장단 등 임원의 '차명계좌'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삼성 본사가 비자금 조성 계획을 세우면, 계열사 차원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는 그룹 임원 명의 차명계좌를 통해 운용됐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비자금 조성의 '두뇌'로 삼성 전략기획실을, 비자금을 조성한 '몸통'으로 삼성물산, 삼성SDI를 지목한 것이다. 운용관리 수단은 차명계좌라고만 밝힌 채 그 주체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날 압수수색으로 비자금 관리의 '손과 발'이 삼성증권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삼성증권은 은행을 보유하지 않은 삼성이 차명계좌를 개설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비자금을 주식ㆍ채권 형태로 관리하면서 자금세탁을 하기에 용이하고, 외부 금융기관과 연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법 의혹이 있는 경영권 승계 과정의 계열사간 주식거래가 이곳을 통해 이뤄진 정황도 있다. 김 변호사는 "10여명의 삼성 사장단 뿐 아니라 삼성증권 사장, 우리은행 행장을 거친 황영기씨 차명계좌도 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삼성증권은 상대적으로 증거 인멸에 취약하다. 계좌기록 등은 모두 전산자료여서 삭제해도 증거가 남는다. 특수본부는 이날 자료 삭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산백업자료가 있는 삼성SDS e데이터 센터도 압수수색 했다.
이와 관련, 김 변호사도 이날 특수본부에 출석하면서 "삼성 본사는 쓰레기통에 종이 하나 없을 것"이라며 "삼성증권이 가장 효율적으로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압수수색 대상으로 지목되지 않은 삼성증권을 겨냥함으로써 삼성의 허를 찌른 측면도 있다.
특수본부는 비자금 의혹 규명 수사에서 '역순의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에서 차명계좌가 발견된다면, 이를 추적해 삼성의 핵심 조직인 전략기획실로 거슬러 올라가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으로 파고든다는 복안이다.
김 변호사 주변에서 맴돌던 특수본부의 수사가 어느 범위까지 계속될 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삼성증권을 압수수색한 것은, 역으로 "김 변호사의 4개 차명계좌 중 삼성증권 연결계좌가 나오거나 추가 제보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낳게 한다.
그렇다면 이는 역으로 김 변호삭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삼성물산, 삼성SDI 그리고 삼성 전략기획실을 압수수색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김수남 차장검사는 삼성 전략기획실 압수수색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검토 중"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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