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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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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진통제

입력
2007.12.0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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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내가 화장대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실로 오랜만인지라, 한참을 말없이 있었는데, 무언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해서, 주섬주섬 일어나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아내는 의자에 앉은 채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간신히 하는 말이 목이, 허리가 움직이지 않아, 였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119를 불러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내의 상태를 본 의사는 모유 수유 산모에게서 가끔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급한 대로 일단 진통제 주사를 한 대 맞으라고 했다. 아이를 앉은 채 멍청한 표정으로 의사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를, 아내가 손가락으로 불렀다. 나, 진통제 안 맞아. 아내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젊은 의사도, 나도, 뚱한 표정으로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진통제 맞으면 아기 젖 못 먹이잖아. 아내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지금 상태론 당분간 모유 수유 못해요. 의사가 아내를 설득했다. 그래, 분유 좀 먹이면 되지. 나도 거들었다.

허나, 아내는 완강했다. 아내에겐 육신의 통증보다 훨씬 더 힘이 센,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든 생각 하나. 우린 모두 어머니의 통증을 받아먹고 살아왔구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저작권자>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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